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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터넷 지도 ‘서울 과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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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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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도메인 연결망 도시 네트워크 구현 실패… 상업 도메인 92% 서울 지향·학술 도메인은 골고루 분산

오철우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eolwoo@hani.co.kr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는 지난 2002년 말 1천만명을 넘어섰다. 인구 100명당 무려 17명이 인터넷에 가입한 것으로 조사돼 2위인 캐나다(8.4명)를 2배나 앞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다른 기록도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임을 입증한다.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 디에스엘(DSL) 가입자는 2001년 말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DSL 가입자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국내 ‘인터넷 도로’는 대부분 서울을 향하고 있다. 인터넷이 ‘허브’를 중심으로 링크된 모습을 보여주는 이미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온 초고속 인터넷은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그런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 시공간을 뛰어넘어 흐르는 가상공간의 정보는 서울과 지방 도시, 심지어 산간벽지를 이어주며 정보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돼왔다. 일부에선 거대 과밀도시의 정보 집중 현상을 벗어나 전국 도시들이 정보 생산·소비의 네트워크를 이루며 어느 정도 분산된 도시군을 이룰 가능성, 곧 ‘도시 네트워크’의 등장 가능성이 제시되곤 했다. 전문 기능을 지닌 여러 도시들의 수평적이고 비계층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리라는 낙관이다.


일방적 정보 흐름… 서울 지배 공고화

우리 현실은 이런 도시 네트워크의 가설과 얼마나 어울릴까. 최근 국내 학자가 국내 인터넷 도메인의 연결망인 하이퍼링크를 조사해 내놓은 ‘한반도 인터넷 지도’의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정보의 수평 흐름이 강화되는 ‘도시 네트워크’의 모형보다는 서울의 지배가 더욱 공고화하는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허우긍 교수(지리학)는 <대한지리학회지> 최근호(제38권 4호)에 낸 ‘인터넷 하이퍼링크로 본 도시 네트워크’란 논문에서 서울이 우리나라 정보의 생산과 소비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주도시’의 지위를 지녀, 마치 한반도 안에서 ‘정보의 섬’과 같은 특징을 띠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흔히 정보통신 기술은 거리 극복 가능성을 지녀 많은 이들이 정보의 광범위한 분산과 지역의 연계를 그리는 수평적 도시 네트워크의 가설을 제시한다”며 “하지만 조사 결과 정보화로 말미암아 ‘종주도시’인 서울의 지배는 오히려 더욱 강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은 허 교수가 하이퍼링크 자동검색 프로그램을 이용해 국내 인터넷 도메인들을 잇는 하이퍼링크들을 추출해내고 다시 이 가운데 일부 도메인을 표본으로 삼아 상호 연결망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드러났다. 그의 연구는 한 웹 페이지에서 다른 웹 페이지로 이어지게 하는 하이퍼링크가 인터넷 정보가 어떻게 흐르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쓰일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허 교수는 2002년 2월 현재 등록된 국내 도메인(.kr) 47만5855개를 자동 검색한 결과 이들 도메인에 담긴 하이퍼링크 288만여개를 추출했다. 이들 도메인은 상업 도메인(.co.kr)이 85~90%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나머지 10~15%를 비영리기관(.or.kr), 학술기관(.ac.kr), 개인(.pe.kr) 등이 차지했는데, 지리적 분포를 조사한 결과 74.8%가 서울과 인천·경기 지역에 몰려 있고 부산 등 6대 광역시는 평균 3%에도 이르지 못하는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불균형은 정보가 어디로 흐르는지를 나타내는 하이퍼링크의 실태에서 더 큰 격차로 나타났다.

허 교수는 3대 도메인인 상업·비영리·학술 도메인 가운데 시도의 인구 규모별로 표본 도메인 1500여개를 뽑아 도시별로 하이퍼링크의 유출과 유입 실태를 조사했다. 그랬더니 상업 도메인 표본의 하이퍼링크 5만1924개 가운데 무려 92%가 서울의 도메인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으로 가는 하이퍼링크는 3%에도 못 미쳤으며 6대 광역시를 다 합쳐도 그 비중은 5%를 넘지 못했다. 특히 서울은 서울 내부의 도메인들끼리 이어지는 하이퍼링크가 94%나 돼 “인터넷의 경제 관련 정보의 생산과 소비에서 서울은 마치 섬과 같은 모습을 띠는 것”으로 풀이됐다. 모든 도시 도메인들의 서울 지향은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부산 92%, 울산 92%, 수원 87%, 대구 59% 등의 순으로 서울 지향성을 나타냈다. 반면 서울과 지방도시 외에 지방 도시들끼리 이뤄지는 하이퍼링크의 네트워크는 매우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전국 모든 도시의 도메인들이 서울로 향하는 것은 서울이 우리나라 정보의 ‘종주도시’이며 서울과 지방의 정보 지배-종속이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허 교수는 풀이했다. 그는 “도시 네트워크의 가설, 곧 엇비슷한 도시들 사이의 횡적 연계를 입증하는 현상은 어느 모로 보나 우리나라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상업 도메인 하이퍼링크의 서울 집중 현상은 국내 전체 도메인들 가운데 수도권에 74.8%가 몰려 있는 현실을 고려해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정보의 서울 집중 현상은 비영리 도메인에서 다소 누그러지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전국 비영리기관 도메인의 서울 지향성은 상업 분야(92%)에 비해 크게 떨어진 57%로 조사됐지만, 역시 전국의 도메인들은 절반 이상이 서울 지향성을 뚜렷이 나타냈다.

정보의 지리적 격차 해소 방안 모색을…

그러나 학술 도메인만은 서울의 ‘우산’ 아래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지방 도시들 사이에 네트워크가 상당한 정도로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술 도메인의 하이퍼링크는 서울 지향성에서 29.4%로 낮은 수치를 보여 대부분 지방 도시들이 광역시를 허브로 삼는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학술 도메인이 국내 도메인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1.8%로 매우 적은 수준이어서 도시간 수평적 네트워크에 영향을 끼치기엔 역부족이었다.

허 교수는 “결국 서울은 전국에서 고립된 섬처럼 정보의 공급원과 소비지의 구실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정보 격차와 관련해 그동안 ‘사회적 격차’의 해소에 정책의 주안점을 두었지만 ‘지리적 격차’의 문제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터넷의 등장은 ‘하루 생활권’을 실현시킨 고속도로의 등장 못지않게 전국 도시체계 등 공간조직의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때문에 다양한 정보가 다양한 곳에서 생산되고 골고루 유통되며 여러 지역 도시들이 상호 네트워크를 이루는 정보의 공간구조는 지리적 균형 발전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허 교수는 “정보기술 자체는 중립적이어서 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모양새가 달라진다”며 “정보의 지리적 격차를 해소할 지역 정보화에 정부와 사회가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의 지리학’에도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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