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중숙 | 순천대학교 교수 · 이론화학 jsg@sunchon.ac.kr
물리학에는 유명한 두 가지의 제2법칙이 있다. 첫째는 중·고교에서 과학 또는 물리를 처음 배울 때 가장 먼저 접하는 뉴턴의 운동3법칙 가운데 두 번째로 나오는 가속의 법칙이다. 그 내용은 “물체가 외부에서 힘을 받으면 그 방향으로 가속이 일어나며, 그 크기는 힘에 비례하고 질량에 반비례한다”이다. 이 법칙은 운동3법칙 중 핵심으로, 이후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나오기 전까지 200여년 동안 물리학을 지배한 이른바 ‘고전역학’의 가장 큰 주춧돌 가운데 하나의 역할을 했다.
둘째는 열역학 제2법칙인데, 흔히 ‘엔트로피 증대법칙’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내용은 여러 가지로 나타낼 수 있지만 “고립계의 자발적 과정에서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는 편이다. 여기서 ‘고립계’는 외부와의 교류가 없는 계를 뜻하며, 가까운 예로는 보온병이 있다. 자발적 과정은 외부의 간섭이 배제된 변화로 선생님이 잠시 한눈을 팔면 어린애들이 차츰 무질서해지는 현상이 그 예이다. 이에 따라 흔히 엔트로피와 무질서를 거의 동의어로 이해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제2법칙은 한 가지 점에서 아주 중요한 대조를 이룬다. 가속의 법칙은 힘을 가한다는 조건이 주어지면 반드시 일어나는 ‘필연법칙’이다. 그러나 엔트로피 증대법칙은 단지 어떤 조건에서 엔트로피가 증대할 가능성이 많다는 뜻일 뿐 언제나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는 뜻에서 ‘확률법칙’이다.
예를 들어 가게에서 막 산 ‘화투’ 상자를 열어보면 12가지 그림이 순서대로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하지만 고스톱 등의 놀이를 하기 위해 섞으면 순서는 무질서하게 바뀐다. 이것을 본래의 순서로 만들려면 ‘가지런히 만들려는 노력’이라는 외부의 간섭이 필요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굳이 이런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화투를 섞는 과정이 수없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처음의 가지런한 상태로 돌아갈 확률이 있다. 다만, 약 10의 61승분의 1이란 극미의 값이어서 평생 오직 화투 섞기만 하더라도 본래의 상태를 회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화투의 예는 겨우 48장에 불과한데도 확률적으로 이토록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대상을 우주 전체의 입자로 확대한다면 그 결과는 가히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프랑스 수학자 푸앵카레는 어떤 계든 충분한 시간만 주어지면 반드시 초기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회귀정리’를 증명했다.
하지만 탁자에서 떨어져 산산이 깨진 꽃병 조각들이 저절로 한데 붙어 다시 탁자 위로 올라가는 과정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믿을 사람은 없다. 하물며 무수한 폭발 속에 끝없이 흩어지는 여러 별들이 언제 또 본래의 자리를 되찾아가리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곧 유한한 인간적 관점에서 볼 때 엔트로피 증대법칙은 분명한 자연과학적 법칙이다. 실제로 회귀정리는 거의 존재 의의만 있을 뿐 광범위한 응용성에서는 엔트로피 증대법칙을 도저히 넘볼 수 없다. 그러나 영겁의 시간을 순간으로 통관하는 전지전능의 신이 있다면 그의 눈에는 여전히 필연적 현상만이 법칙으로 보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신의 입장에서는 가속의 법칙이나 회귀정리 등의 필연법칙만을 법칙으로 인정할 뿐 엔트로피 증대법칙은 굳이 법칙이라고 부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은주
하지만 탁자에서 떨어져 산산이 깨진 꽃병 조각들이 저절로 한데 붙어 다시 탁자 위로 올라가는 과정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믿을 사람은 없다. 하물며 무수한 폭발 속에 끝없이 흩어지는 여러 별들이 언제 또 본래의 자리를 되찾아가리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곧 유한한 인간적 관점에서 볼 때 엔트로피 증대법칙은 분명한 자연과학적 법칙이다. 실제로 회귀정리는 거의 존재 의의만 있을 뿐 광범위한 응용성에서는 엔트로피 증대법칙을 도저히 넘볼 수 없다. 그러나 영겁의 시간을 순간으로 통관하는 전지전능의 신이 있다면 그의 눈에는 여전히 필연적 현상만이 법칙으로 보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신의 입장에서는 가속의 법칙이나 회귀정리 등의 필연법칙만을 법칙으로 인정할 뿐 엔트로피 증대법칙은 굳이 법칙이라고 부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