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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공연- 맘마미아, 추억의 아바에 객석 ‘신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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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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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풀어낸 뮤지컬 <맘마미아> 열광하는 까닭… 디바의 열연에 캐릭터 · 줄거리로 ‘아바 세대’ 자극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한 여자는 순백의 웨딩드레스에서 완벽한 행복이 있다 하고, 또 한 여자는 결혼이야말로 철없는 짓이라고 주장한다. 한 여자는 한 남자에게서 영원한 미래를 바라고, 또 한 여자는 세명의 남자를 놓고 누가 ‘결정적으로’ 정자를 제공했는지 헷갈려한다. 한국의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한 여자’는 엄마요, ‘또 한 여자’는 딸이겠지만 뮤지컬 <맘마미아>는 그 반대다. 68혁명, 반전·평화 운동, 히피즘이 휩쓸고 간 1970년대에 청춘을 보낸 엄마, 도나는 티셔츠에 ‘결혼은 관습이다’를 훈장처럼 쓰고 다닌다.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풍족한 사춘기를 보낸 딸, 소피는 결혼에 일찍이 자신을 의탁하는 데 일말의 저항심이 없다.

여성들이 결혼에 대해 갖는 환상과 억압, 엄마와 딸의 관계 등을 아바의 노래로 묘사한 <맘마미아>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예술의 전당 제공)
‘아바의 노래로 만들어진 웨스트엔드의 전설’ 뮤지컬 <맘마미아>(이탈리어로 ‘어머나’를 뜻하는 말)가 1월25일 막을 연 이래 2천여석의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를 꽉꽉 채우며 대박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관객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아줌마 관객들은 매회 공연 때마다 벌떡 일어나 춤을 추며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흥행에 신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는 왜 <맘마미아>에 열광할까.


연일 대박 행진… 아바가 통했다

사실 <맘마미아>의 상업적 성공은 예견된 것이었다. 90년대에도 ‘아바’의 지치지 않는 인기에 주목한 영국의 프로듀서 쥬디 크레이머는 극작가 캐서린 존슨에게 아바의 노래로 뮤지컬을 엮을 것을 제안했고, 1999년 초연한 이래 4년 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점유율 99%를 올리며 9·11테러 이후 침체된 뮤지컬 시장을 복구했으며, 도쿄·함부르크·토론토 등 세계 각 도시에서 올려졌다. 성공이 입증된 흥행의 보증수표 <맘마미아>에 2002년 <오페라의 유령>으로 뮤지컬 인구가 폭증한 우리나라도 뛰어들었다. 그해 말 한국 뮤지컬의 쌍두마차라 할 수 있는 신시뮤지컬, 에이콤에 예술의전당과 문화방송이 공동으로 제작을 시작한 이래 100억원의 제작비와 이 중 10억원의 홍보비를 들여 1년 넘게 길거리현수막·신문·방송에서 한순간도 ‘맘마미아’를 잊을 수 없게 광고했고, 기자단을 웨스트엔드로 보내 현지 공연을 관람시켰다.

하지만 ‘이국적인 스토리’에다 순전히 우리말로 팝송을 풀어 노래하는 <맘마미아>가 국내에서 얼마나 뜨거운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였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 성공의 키워드는 역시 ‘아바’였다. 1974년 유로비전송 콘테스트에서 <워털루>로 그랑프리를 차지한 비욘-아그네사, 배니-프리다 듀오 커플 그룹은 유럽의 먼 나라 스웨덴을 ‘볼보 자동차에 이어 그룹 아바의 생산국’으로 전 세계에 알렸다. 실제로 두쌍의 부부이던 아바는 자신들의 이야기와 경험을 풀어놓은 감미로운 사랑 이야기를 북구의 얼음 같은 투명한 음색으로, 또한 그 얼음도 녹일 수 있을 것 같은 열정으로 뜨겁게 불렀다.

‘음악성에 대한 진지한 평가를 받기엔 너무 많은 대중적 인기를 받은’ 아바의 노래는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고고장에 가면 끊임없이 울려퍼졌고, 몇몇 곡은 ‘토끼소녀’에 의해 번안돼 불리기도 했다. 그러니 당시 아바와 함께 자연스레 청소년기를 보낸 왕년의 ‘아바 세대’들은 익숙한 멜로디에 마음이 열리고 몸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갑자기 대중가요 노랫말이 알알이 가슴에 박힌다고 하지 않나. 감정을 섬세하게 읊은 아바의 노랫말은 쉽게 뮤지컬 대사로 변신할 여지가 많았으나 사랑을 갈구하고 또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는 <맘마미아>의 줄거리에 아바의 노래는 신기할 정도로 척척 들어맞아 본래 이 곡들이 <맘마미아>를 위해 쓰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세명의 옛 연인이 딸의 결혼식에 갑자기 나타나자 당황하는 도나에게 친구들은 본래 여자 친구들간의 우정을 기억 삼아 작곡됐던 <치키티타>를 불러주고, 옛 연인 샘이 이혼 사실을 밝히는 대목에선 비욘과 아그네사의 애정이 삐걱거리던 시절에 만들어진 (너는 너, 나는 나)를 부른다. 또 도나의 친구 타냐에게 아들뻘 되는 청년 페퍼가 반하자 타냐는 <엄마는 알고 있니>(Does Your Mother Know)로 응수한다. 화려한 춤과 무대가 필수적인 뮤지컬에서 드럼 비트가 강한 아바의 노래 <수퍼 트루퍼> <댄싱 퀸> 등은 단연 분위기를 띄운다. 도나와 그의 친구들이 번쩍이는 아바의 무대 복장으로 짠~ 나타나 <댄싱 퀸>을 부를 때면 나이 든 관객들도 ‘어리고 예쁜 열일곱’으로 돌아간 듯한 흥분으로 가슴이 설렌다.

빛나는 아줌마 3총사에 해방감 느껴

본래 각본·제작·연출이 모두 여성이었기 때문에 ‘여성에 의한 여성 뮤지컬’이라고도 불리는 <맘마미아>는 역시 여성 디바가 빛나는 무대다. 박해미(도나 역), 전수경(타냐 역), 이경미(로지 역)는 ‘아줌마 3총사’로 분해 절창과 열연으로 무대를 쥐락펴락한다. 아바의 노래 중에서 평론가들이 가장 뛰어난 노래라고 일컫는 을 기가 질리도록 부르는 박해미의 열창이 눈부시다. 실제 소피보다 10살 더 많은 배해선은 청순한 목소리와 파워풀한 몸짓으로 21살 아가씨를 재연했다. 여기에 도나의 세 남자 샘(성기윤), 빌(박지일), 해리(주성중)들은 적절한 호흡으로 극을 매끄럽게 이어나간다.

<맘마미아>의 캐릭터와 줄거리 역시 팬들을 자극하는 요소다. <맘마미아>는 여성들이 결혼에 대해 갖는 환상과 자유와 억압을 절묘하게 보여준다. 21살에 결혼을 원하는 딸과 젊은 시절의 화려한 생활을 접고 ‘한부모’로 꿋꿋하게 딸을 키워온 엄마의 선명한 대비가 그렇다. 세 남자와의 불장난이 같은 시기에 겹쳐 누가 아빠인지 가려낼 수 없는 상황에서, 딸이 엄마의 손을 잡고 식장에 입장하겠다는 발상은 분명 해방감을 안겨주는 대목이다. 또한 결혼을 미루고 먼저 세상을 여행하겠다는 딸의 결심도 ‘정치적으로 옳다’. 막이 내리고 집으로 돌아서며 ‘우리 맘마들도 저렇게 딸을 놓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괜한 것은 아닐 테니까. 4월18일까지 1588-7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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