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공포 퍼뜨리는 바이러스의 항변… 인간이 독성 강화에 한몫 · 암세포 사멸 공헌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새해 벽두부터 지구촌 곳곳에서 동물 바이러스의 역습이 끊이지 않는다죠.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광우병, 조류독감 등이 생명을 위협하며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명도 끊이지 않고 있어요. 조류독감 바이러스(avian influenza)라는 치명적인 병원체로 거듭난 우리의 벗들은 온갖 가금류를 공격한 데 이어 인간을 덮치기 시작해 10여명의 사망자를 냈다지요. 세계보건기구(WHO)는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원천봉쇄하려면 닭과 오리 등에 ‘살해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기막힌 처방’을 내놓았더군요. 백신이 나오려면 적어도 6개월이 걸리기에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는 초대형 도살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프랑스의 동물애호가 브리지트 바르도가 한마디 했더군요. 그의 부탁대로 닭과 오리들을 고통 없이 죽일 방법을 서둘러 찾아보세요. 정말로 우리는 끔찍한 재앙을 일으키는 악의 화신일 뿐인가요.
인체의 면역 체계 돌파하려는 전략
그동안 우리는 인간 병원체로 변신하려고 끊임없이 발버둥쳤지요.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아 치명적인 독감 바이러스가 될 수 있었습니다. 독감 바이러스로 변신한 우리는 에이즈만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HIV)나 코감기 바이러스 등과 달리 다양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어요. 대개의 우리 벗들은 서로 다른 질병을 일으킵니다. 바이러스마다 생물종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조류독감을 일으키는 우리는 대개 8개의 염색체로 이뤄졌어요. RNA 가닥들이 두툼한 막에 싸여 있고, 막은 H항원이나 N항원이라 불리는 미세한 단백질로 덮여 있어요. H항원이 숙주 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할 때 RNA가 파고들어 바이러스 공장을 세우지요. 감염된 세포가 침투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복제하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인체의 면역 체계가 작동해 우리를 박멸하기 때문이죠. 그런 불행한 사태를 피하려고 변신을 거듭해 전혀 다른 2세들을 마구 쏟아내는 것이죠. 애당초 우리가 변신의 귀재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무분별한 생태계 파괴와 도시화로 인한 인구 밀집 등이 조용히 살고 싶은 우리의 ‘코털’을 건드렸어요. 게다가 기후 변화와 항공여행의 증가, 식품의 세계화 등에 따라 우리는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세력을 확장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생명력을 키우던 우리에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공격이 심상치 않자 인간들도 빠르게 방역체계를 갖추기 시작하더군요. 이미 우리를 손쉽게 검출할 수 있는 장비가 개발되기도 했지요.
바이러스 DNA 배열이 1만1천개나 되는 칩을 만들어 지구상에 있는 우리 종족을 색출하기 시작했지요. 환자의 침을 면봉에 묻혀 칩 위를 문지르면 형광분자가 특정 패턴으로 빛을 내면서 우리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변신술로 색출망을 빠져나가도 안전을 보장받지는 못하죠. 다양한 백신들이 우리의 병기를 무력화하며 DNA로 면역을 유도하기 때문이죠.
인간이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역시 변신의 재주를 수시로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누가 죽기를 소망하겠습니까. 바이러스라는 저주받은 이름으로 불리는 우리에게도 살고 싶은 욕망이 있게 마련이죠. 우리가 해마다 크고 작은 ‘항원변이’를 거듭하는 것은 살아남으려는 극적인 노력의 결과입니다. 대략 10년에서 40년마다 독감 대유행이 발생하는 것은 대변이(antigenic shift)가 이뤄진 탓이죠. 지난 세기에 있었던 스페인 독감(1918년), 아시아 독감(1957년), 홍콩 독감(1968년), 러시아 독감(1977년) 등이 대변이에 따른 것입니다. 항원변이는 숙주가 동시에 두 종으로부터 우리에게 감염될 때 일어난다더군요. 요즘 인간을 위협하고 있는 조류독감은 우리가 소변이(antigenic drift)를 하는 과정에서 중복 감염과 유전자 재조합 등이 이뤄진 탓입니다. 우리가 치명적인 위협으로 작용하는 것은 변이의 폭이 결정합니다. 해마다 유행하는 변종 독감은 변신의 폭이 크지 않지만 몇 차례의 소변이를 거치며 최상의 변종들이 만들어지죠. 여러분은 이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를 무작정 두려워할 필요는 없답니다. 독감을 일으키는 우리의 전이 경로는 매우 복잡하죠. 예컨대 오리를 비롯해 물에서 사는 새들에서 유래돼 사람에게 전파된 바이러스들은 반드시 돼지나 닭을 거쳐야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변신해요. 돼지나 닭이 인간과 조류에 있는 우리가 서로 결합해 새롭게 변신하는 ‘혼합 용기’(mixing vessel) 구실을 하는 셈이죠. 지난 1997년에 홍콩에서 발생한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닭에서 직접 전염된 사람들만 희생시켰다지요. 조류독감이 인간을 통해 전파된다거나 특정한 사람이 조류로부터 감염된다는 명백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조류 바이러스에서 종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하는 인자를 찾아낸다면 조류독감을 일으키는 우리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물론 그것이 간단히 이뤄진다면 인간들이 요즘처럼 호들갑을 떨지도 않을 텐데.
인간이 ‘혼합 용기’로… 바이로테라피 주목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은 조류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이 인간에게 흔한 변종 독감에 감염됐을 때입니다. 우리가 서로 반응하면서 인간끼리 전염될 수 있는 변종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죠. 인간이 우리의 변신을 꾀하는 ‘혼합 용기’ 구실을 하는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여서 수십,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닭을 도살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을 겁니까. 아무리 우리가 생존을 위해 변신을 거듭한다 해도 그런 상황까지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감염력이 강한 우리를 제압하는 최선의 방법은 백신이라는 걸 모르지 않겠지요. 우리의 번식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에 당장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렵니다.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독성을 약하게 하는 백신을 서둘러 개발하기 바랄게요. 새로운 싸움은 그 뒤에 벌여봅시다.
정말로 우리는 인류의 천적일 수밖에 없나요. 아무리 우리가 변신에 능해도 하찮은 미물일 뿐이지만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도구가 되고 싶습니다. 요즘 우리는 인류의 친구가 될 조짐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어요. 종양 세포를 선택적으로 감염시켜 사살함으로써 인간을 불치병에서 구하는 ‘바이로테라피’(virotherapy)를 주목하라는 것이죠. 우리가 암세포를 잡는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알려졌어요. 광견병 바이러스로 만든 생백신이 자궁경부암 환자를 치유하고 광우병 바이러스가 암세포를 근접 살해했어요. 요즘 레트로 바이러스는 특정 유전자가 작동하지 않는 유전병을, 아데노 바이러스는 다양한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데 쓰일 준비를 하고 있다지요. 우리가 정상 세포는 그대로 두고 오직 암세포만 죽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때론 독약이 최후의 처방이 될 수 있듯이 지독한 우리를 써주세요. 만물의 영장이라는 여러분과의 관계 개선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인간 병원체로 변신하려고 끊임없이 발버둥쳤지요.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아 치명적인 독감 바이러스가 될 수 있었습니다. 독감 바이러스로 변신한 우리는 에이즈만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HIV)나 코감기 바이러스 등과 달리 다양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어요. 대개의 우리 벗들은 서로 다른 질병을 일으킵니다. 바이러스마다 생물종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조류독감을 일으키는 우리는 대개 8개의 염색체로 이뤄졌어요. RNA 가닥들이 두툼한 막에 싸여 있고, 막은 H항원이나 N항원이라 불리는 미세한 단백질로 덮여 있어요. H항원이 숙주 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할 때 RNA가 파고들어 바이러스 공장을 세우지요. 감염된 세포가 침투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복제하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인체의 면역 체계가 작동해 우리를 박멸하기 때문이죠. 그런 불행한 사태를 피하려고 변신을 거듭해 전혀 다른 2세들을 마구 쏟아내는 것이죠. 애당초 우리가 변신의 귀재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무분별한 생태계 파괴와 도시화로 인한 인구 밀집 등이 조용히 살고 싶은 우리의 ‘코털’을 건드렸어요. 게다가 기후 변화와 항공여행의 증가, 식품의 세계화 등에 따라 우리는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세력을 확장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생명력을 키우던 우리에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공격이 심상치 않자 인간들도 빠르게 방역체계를 갖추기 시작하더군요. 이미 우리를 손쉽게 검출할 수 있는 장비가 개발되기도 했지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상을 다룬 대만 차이밍량 감독의 영화 <구멍>. 이 영화에서 인간들은 벌레처럼 살다가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