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독단적인 이라크 전을 통해 국제 평화 질서를 무시했다. 그리고 세계를 아군과 적군으로 양분하려 하고 있다. 지구상에 미국의 깃발을 꽂으려는 듯한 부시의 행동은 명백히 세계의 평화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이들의 영향력이 못 미치는 국가가 어디에도 없는 지금 더 이상 미국은 하나의 국가를 넘어서 통합적인 시각에서 다루어져야만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 세계적 상호 연관성 하에서의 낙선운동이 내정간섭이라고 해서 어째서 법적 안정성을 의심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초강대국이 세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초이기주의적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따라서 한국을 떠나 세계인이 부시 낙선운동을 지지해야 할 당위성 역시 성립된다. 현재 미국 대부분의 언론은 미국 국민의 올바른 결정에 기여를 못하고 있다.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미디어를 대신해 시민단체가 올바른 정보 제공의 역할을 담당해야만 한다. 이를 위한 길잡이로 발벗고 나서겠다는 이들이 부시 낙선운동을 이끄는 사람들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기 전에 미국은 왜 자신들이 테러를 당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만 했다. 정부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언론이라도 자국민들에게 그러한 행동을 촉구했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동향 보고자’의 역할 이상을 해내지 못했다. 이제 언론은 잘못을 사과해야만 하며 미국 국민은 신뢰성 있는 길잡이를 통해 충분한 정보습득 뒤에 투표를 해야함이 옳다. 부시 낙선운동은 단순히 부시의 낙선을 떠나서 ‘무장한 세계화’에 대한 반대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하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 친미 사대주의자, 냉전 논리자에 대한 경고의 의미 역시 지닌다는 것이다. 냉전은 끝났다. 우리는 미국의 속국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친일, 친미 반민족 행위와 냉전 이데올로기를 통해 축적된 자양분으로 현재도 끊임없이 ‘배반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미국에게는 엄청난 조공을 바치면서 북한에 주는 쌀의 무게에는 매우 예민한 감정을 가진 것이 그들이다. 부시 낙선운동의 성공은 이들에게 보내는 경고인 동시에 정치적 무관심과 불감증에 무디어진 국민들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세계적으로 많은 부시 반대 캠페인이 진행 중에 있다. 부시 낙선운동은 이러한 흩어져 있는 시민 연대를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주고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줄 좋은 대안이 되리라 생각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행동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시 낙선운동은 도리어 ‘부시의 역공’에 휘말릴 수도 있다. 시민연대들이 하는 행동을 테러단체들의 사주로 전락시키거나 미국의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로 기만할 수도 있다. 내부적으로는 친미 사대주의자와 냉전 논리자가 협공해서 조롱 섞인 야유를 보낼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것을 경계하며 매우 초보적인 단계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낙선운동의 구체적 모습에 관해서 즐거운 고민 역시 동반해야만 할 것이다. - 황산백/ 울산 제일고 2년
| [ 칭찬과 아쉬움 ] ‘부시 낙선운동, 평화운동인가 내정간섭인가?’를 묻는 예컨대 논술에 찬반 양론이 엇갈렸다. 부시 낙선운동이 세계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 행사라는 견해와 미 제국주의와 닮은꼴의 내정간섭이라는 비판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두 입장 모두에서 좋은 글이 나왔다.
이번주의 ‘예컨대’에 뽑힌 울산 제일고 황산백 학생의 글은 분석력과 상상력이 어우러진 훌륭한 글이다. 나비 효과를 인용한 첫 단락부터 인상적이다. 매력적인 첫 단락은 군더더기 없는 본론으로 이어진다. 본론은 세계의 연관 → 한반도 전쟁위협 → 부시를 반대할 시민적 저항권 → 미국의 언론 상황 순서로 구성돼 있다. 부시 낙선운동의 정당성을 이끌어내는 짜임새 있는 본론이다. 결론 부분에서 부시 낙선운동의 의미를 “‘무장한 세계화’에 대한 반대”로 넓혀 생각한 점은 더욱 빛난다.
다만 가끔 어색한 문장이 눈에 띈다. ‘상시적으로 → 항상’ ‘완벽히 차질을 빚었다 →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는 난관에 부딪혔다’ ‘즐거운 고민 역시 동반해야 할 것인다 → 즐거운 고민도 해야 한다’로 고쳐보면 더욱 자연스러운 글이 된다. 황산백 학생뿐 아니라 상당수 학생들이 논술글이라는 중압감에 눌려서인지 지나친 한문 어투를 쓰거나, 쓸데없이 글꼬리를 늘이는 경향이 있다. 주의해야 할 점이다.
인하대 부속고 전해준 학생도 당선 글에 버금가는 글을 보내왔다. 우연히 그도 나비 효과를 인용했다. 부산 국제고 김지현 학생은 부시 낙선운동의 정당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을 보내왔다. 무엇보다 낙선운동 근거의 구체성이 빛났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 외에도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 비준 거부, 국제 형사재판소 탈퇴 등 부시 집권 이후 나온 제국주의적 정책을 조목조목 제시해 글의 설득력을 높였다. 다만 황산백 학생의 글이 부시 낙선운동의 근거를 한반도 위기에서 찾아 현실감이 살아난 반면, 두 학생은 부시의 일반적인 제국주의 정책에 초점을 둬 근거의 절박함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남았다.
대전 보문고 유성민 학생은 부시 낙선운동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보내왔다. 그는 “‘부시만은 안 돼!’라고 미국에 호소하는 것은, 부시가 ‘후세인은 안 돼!’라면서 이라크를 점령한 모습과 겹쳐질 뿐”이라고 주장했다. 부시 낙선운동을 미국 정치에 대입시키는 독특한 방식으로 글을 풀어갔으나, 오히려 그 방법이 글의 논점을 분산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충남 예산고 이찬우 학생도 부시를 떨어뜨린다고 미 제국주의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요지의 글을 보내왔다.
이번주는 ‘예컨대’에 신입생과 졸업생이 함께 생겼다. 스스로 ‘뉴페이스’라고 소개한 광명시 진성고 이원종 학생과 서울 숭문고 전재일 학생이 처음으로 글을 보내왔다. 두 학생 모두 충실한 내용에 비해 글 구성력이 부족했다. 앞으로 좋은 글을 부탁한다. 끝으로 고교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글을 보내온 예산고 이찬우 학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의 글에는 항상 균형 잡힌 사고가 담겨 있었다. 마치 제자를 떠나보내는 선생님의 마음처럼 대견스럽고, 아쉽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