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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영화- 우리 아이는 행복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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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1-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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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을 사색하는 우화 <곰이 되고 싶어요>… 단순한 질감의 수채화에 감동이 흐른다

인도의 정글에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소년 모글리가 아름다운 소녀에게 이끌려 결국은 인간의 마을로 돌아오는 이야기인 <정글북>이나 늑대가 키운 아이를 ‘훈육’을 통해 인간으로 되돌리는 늑대소년 이야기, <타잔> 등은 모두 동물의 품에서 자라난 인간이 어떻게 다시 문명의 품으로 돌아오는가를 그린다. 왜 이런 이야기는 문학이나 영화 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 그 속에서는 문명과 야만, 인간과 자연의 철저한 이분법 속에 인간의 문명이 승리한다는 오만함, 자연에 대한 뒤틀린 공포가 느껴진다.

곰이 되려는 소년의 도전과 시련

애니메이션 <곰이 되고 싶어요>(1월30일 개봉)의 소년 ‘작은 곰’ 역시 인간의 아이로 태어나 엄마 곰의 젖을 먹고 자랐지만 그가 택하는 길은 모글리와 다르다.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고 곰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아이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시련을 헤치고 나아간다.


북극의 거친 바람이 불어오고 대지의 83%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그린란드. 막 아이를 출산해 행복에 젖은 사냥꾼 부부에게 어미곰의 슬픈 울음 소리가 들려온다. 늑대의 습격을 피해 힘겹게 도망치던 어미곰이 낳은 새끼곰이 차갑게 죽어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곰의 슬픈 울음소리를 들으며 태어난 아기는 ‘작은 곰’이란 이름을 갖게 된다. 슬픔에 젖어 종일 먹지도 않고 물속만 바라보며 죽은 새끼를 그리워하는 엄마곰을 위해 아빠곰이 인간의 아이를 훔쳐 데려오면서 인간의 아이 ‘작은 곰’은 진짜 곰으로 자라난다. “넌 마법에 걸린 곰이야”라며 극진한 사랑으로 보살피는 엄마곰과 함께 소년은 곰의 말과 행동을 익히고 스스로를 곰이라고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필사적으로 곰의 뒤를 쫓던 아버지는 엄마곰을 죽이고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지만, 아이는 다시 사람이 되기를 거부한다. 결국 아이는 곰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산의 정령을 찾아 떠난다.

75분의 짧고 단순한 우화(게다가 애니메이션)지만, 아이나 어른 모두 많은 느낌과 생각을 안고 극장을 나서게 된다. 인간과 동물의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도전을 이겨내는 ‘성장 이야기’인 이 영화는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무엇인지를 묻고, 부모의 사랑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질문하기 때문이다. ‘작은 곰’의 인간 부모들이 결국 아들의 행복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를 느끼고 “살아 있는 것은 사슬이 아니라 사랑으로 붙드는 것”이라며 어려운 결심을 하는 장면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가족이나 사회가 정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투명한 화면·음악으로 그린란드 묘사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자연과 인간의 삶이 공존하는 땅 그린란드의 풍경, 그것을 투명하게 묘사해낸 화면과 음악이다. 온통 흰색으로 뒤덮인 투명한 대지 위로 검게 빛나는 밤하늘과 오로라를 안고 색이 변해가는 하늘은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단순한 선과 물의 질감을 살려 수채화로 그린 인물과 동물들, 북극의 광활한 산맥과 빙하는 충분한 여백을 담고 있다. 매끈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 비해 화면이 거칠고 주인공들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 인위적 장치도 없지만, 개성 있는 그림과 그 위를 타고 끊임없이 귓가에 맴도는 자장가와 잔잔한 음악이 잘 섞여 있다. 덴마크의 애니메이션 작가 야니크 하스트룹이 감독하고, 덴마크·프랑스·노르웨이 합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지난해 베를린영화제 아동영화 부문 특별언급상(Special mention) 등 여러 영화제의 상을 받았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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