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지하듯 종교는 신앙의 진정성을 생명으로 한다. 그러나 지난 2002년 채플수강에 관한 의견을 묻는 연세대의 설문조사 결과, 38.3%가 ‘졸업을 위한 패스학점’, 20.5%가 ‘무가치한 강제시간’으로 답했다고 한다. 또한 돈을 매개로 채플 대리출석 아르바이트 거래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채플시간을 그저 ‘시간 때우기’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비합리적 제도하에서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의 진정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 [ 칭찬과 아쉬움 ] ‘채플 의무수강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가’를 묻는 예컨대 논술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종교를 갖지 ‘않을’ 자유를 옹호하는 글을 보내왔다. 학생들은 한목소리로 일부 기독교 대학의 채플 의무수강 제도가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수준작들은 적지 않았으나 글의 내용부터 논조까지 다양성이 부족한 한주였다.
이주의 ‘예컨대’로는 인하대 부속고 전해준 학생의 글이 뽑혔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채플 의무수강 반대 논리를 풀어갔다. 헌법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 설문조사 결과 나타난 채플 의무수강의 문제점 등이 그가 제시한 논거다. 그의 논거와 논리 전개방식이 세련되거나 파격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그의 글은 적절한 논거를 적절한 단락에 배치해 논리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유려하다. 무엇보다 단정한 문장과 간결한 비유가 빛난다. 학생들의 글에서 자주 화려한 글 치장이 어색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본다. 무리한 비유가 글의 흐름을 오히려 방해하는 일도 적지 않다. 그런 면에서 전해준 학생의 문장은 모범이 될 만하다.
다만 결론 부분이 아쉽다. 전해준 학생은 ‘종교적 데탕트’라는 열쇠말로 결론을 맺고 있다. 결론이 선언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충분한 논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이 열쇠말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단 두 문장으로 끝나버렸다. 바로 앞부분까지 ‘종교적 데탕트’와는 관련 없는 한국 개신교에 대한 비판 등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앞 단락을 조금 줄이고, 마지막 단락을 보강하는 편이 논리적 완결성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대전 보문고 유성민 학생은 불교 학교에 다니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풀어갔다. 그의 요지는 채플 수강을 강요하는 기독교 대학의 태도가 타자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예수의 가르침과도 상반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활에서 우러난 경험에 바탕을 둔 글이어서 평균적인 설득력은 있지만, 경험이 보편으로 확산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서울 용화여고 이윤아 학생은 ‘점수 맞춰서’ 대학 가는 한국 현실에서 채플 때문에 대학 선택의 자유가 제한돼서는 안 된다는 현실론을 주장했다. 더구나 졸업에 지장을 받아서는 더더욱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 종교의 자유를 제한해 학생들의 학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다른 학생의 글에서도 자주 나오는 논리였다. 이윤아 학생의 글은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들어가다 보니, 논리의 구성이 세련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광주 대성여고 손모아 학생의 글은 일단 글의 길이가 짧고, 논리 구성의 짜임새가 부족했다.
인천고 최진헌 학생도 최근 프랑스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수업 중 차도르 착용금지’와 채플수강을 연결한 글을 보내왔다. 그의 글은 다양한 논거에 바탕을 둔 풍부한 내용을 자랑한다. 그러나 어법과 단어 사용에서 지적받을 점이 있다. 우선 가치의 함양, 자충수, 맹목적, 타율적 등 지나친 한문 어투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문 어투는 글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고, 자칫 자기 과시적인 글로 보일 수 있다. 되도록이면 쉬운 말을 사용하는 것도 논술의 기초임을 기억하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