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 좋은 방에서 쉬기 좋은 방으로 탈바꿈… 감각적 인테리어 · 열린 서비스로 손님 맞이
내가 한없이 연민하고 또 한편 더없이 경멸하는 공간 러브호텔에 대한 생각이 요즘 조금 달라졌다. 겉으로는 뻔뻔스럽게 보이겠지만 러브호텔에 드나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내부에서 작동하고 하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생각하면 때때로 마음이 ‘짠’했다. 그러면서도 그 천박한 건축 양식이나 몸 팔아 신분 상승하자 식의 역겹기 짝이 없는 모텔 이름들(예를 들어 ‘꿈의 궁전’이나 ‘신데렐라’)을 생각하면 모텔 업주들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분노심 같은 게 치밀어 오르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자동차로 서울 시내를 달리다보면 건물 외관이나 이름만 보고도 한번 들어가보고 싶은 멋진 모텔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한번은 일 때문에 올림픽공원 근처에 갔다가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모텔이 있어서 혼자 불쑥 들어가본 일이 있다. 그 호텔은 객실마다 나무, 재스민, 초콜릿, 물, 장미 같은 이름이 붙어 있고, 안에 들어가보면 그 이름에 걸맞은 각기 다른 색과 향으로 실내장식을 한 아주 감각적인 호텔이었다. 한마디로 시각도 후각도 즐거운 모텔이었는데, 숙박료는 겨우 3만5천원밖에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곳은 건축가 김영옥(로담건축 소장)이 리모델링한 러브호텔이었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요즘 러브호텔은 내부도 장난이 아니에요. 인터넷에 모텔 추천하는 카페도 있는데, 회원들이 올려놓은 사진을 보니까 무슨 특급 호텔 같던데요.” 후배의 얘기를 듣고 모텔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잠시 놀러갔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여친(여자친구를 지칭하는 통신 용어)이랑 어제 드뎌 ×호텔을 다녀왔는데 뭐가 어떻고 저떻더라’ 하면서 회원들이 몸소 체험한 모텔 방문기와 디지털로 찍은 사진들을 열심히 올려놓고 있었다.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읽으며 나는 인테리어나 서비스의 질을 따지기보다는 오직 남의 눈에 안 띄기만을 간절히 바랐던 우리 윗세대의 모습에 비하면 훨씬 더 밝고 정직하며 희망적인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그 변화에 고무되어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들이 마치 순례지라도 되는 양 다녀와서 열심히들 후기를 올리고 있는 방이동의 한 호텔에 가보았다. 숙박료가 7만원이나 했지만 VIP룸(일본관)에 들어서자 내 입에서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대나무로 장식한 파티션을 중심으로 침실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거실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고 좌식 탁자와 의자, 그리고 초고속 인터넷 전용선이 깔린 컴퓨터와 대형 텔레비전이 있었다. 그리고 건너편 침실에는 침대에 누워서 대형 벽걸이 모니터를 통해 DVD를 볼 수 있도록 하였고, 심지어 자외선 소독기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건 화장실과는 별도로 설치된 자쿠지(일명 월풀 욕조)와 스팀 사우나실이었다.
건축가 정기용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외국은 호텔에서 러브도 하고 회의도 하는데, 우리는 호텔에서는 잠만 자고 러브는 딴 데 가서 하는 거라 생각하니 기형적인 건물이 나온다.” 그런데 이제 슬슬 달라지고 있는 모양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러브호텔에서 ‘여친’ ‘남친’이랑 리포트를 같이 쓰고 시험공부도 하고 있고, 나역시 딱히 함께 ‘러브’할 사람이 없어도 러브호텔에 가고 싶어졌다. 새롭고 멋진 공간에서 DVD도 보고 거품목욕도 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