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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논술길라잡이] 동양의 인간관 1 -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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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1-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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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도가 아니다?

“도라 말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 <도덕경> 첫 구절이야. 누구든지 도(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거기에 대해 누군가가 ‘이것이오’라고 대답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것이 과연 도일 수 있을까? 그건 지금 당장은 진리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시대와 상황이 바뀌어도 과연 그럴까?

다음 질문. 그러면 도는 없는 것 아니오? 노자는 말해. “지금 이 순간에 니가 도라고 하는 것도, 옛날에 누군가가 말했던 것도, 앞으로 누군가가 말할 것도 도다. 그러므로 우주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것, 그것이 도다. 그 도에서 모든 만물이 생겨나고 생겨나고 생겨난다(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무언가가 없어지더라도 그것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 변하는 것이므로 모든 것은 늘 생겨난다. 그 늘 생겨나게 하고 늘 변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도다.”

도는 관계다


모든 것이 늘 생겨나게 하는 게 뭘까? 그건 바로 ‘관계’야! 우주만물의 어느 무엇 하나 ‘관계’를 통하지 않고서 나오는 것이 있는가. 관계는 우주의 시초, 아니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고, 우주의 끝, 아니 그 이후까지 있는 거야. 관계는 붙들 수도 없고 특별하게 이름지을 수도 없지만 늘 있는 것이라는 거지.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연기’(緣起)지. 불교의 세계관은 ‘諸法無我 → 諸行無常’, 즉 ‘모든 것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은 변한다’로 압축돼. 간단히 말하면, ‘무한관계 속의 무한변화’라 할 수 있지.

無爲自然 - 참 나로 관계맺기

이제 ‘무위자연’이 쉽게 해석돼. 그것은 ‘(억지로 이것이라고) 함 없이 스스로 그러함’이야. 이때 자연은 서양적 개념인 ‘nature’와 달라. 그 자연은 인간의 관점에서 대상화한 사물이지. 그러나 노자의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과정 자체를 뜻해. 따라서 무위자연은 원래 그러한 대로 가도록 하라는 말, 억지로 이리저리 휘두르지 말라는 말이 돼.

여기서 ‘무위’를 마치 아무 짓도 하지 말라는 말로 해석해서는 곤란해. 무위란 어떤 인위적인 행위, 꾸미는 짓, 자기에게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 것을 억지로 하지 말라는 거야. 세상이 만들어놓은 질서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 어떤 초월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에 자기를 옭아매는 것을 거부하라는 거지. 대신 진실로 자신이 원하는 바, 자신의 자연스러움에서 솟구치는 욕망을 거스르지 말라는 거야. 그런 자기로부터 솟구치는 자연스러움으로 이웃과 세계로 나아가 관계맺으라는 말이지.

‘어린아이’와 같은 자유로움

노자는 도를 닦은 사람을 ‘어린아이’라고 해.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규정성’이지. 오늘날 사람들은 얼마나 똑똑한가.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잘살게 되는지 너무나 잘 알아. 길을 이미 알아버린 거지. 돈만 벌면 잘살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머뭇거리지 않고 잘도 제 길을 가. 그러나 무한한 도를 아는 자는 늘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이웃, 새로운 나를 만나.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기에 모든 것이 새로운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늘 새로운 길을 걷는 사람이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창조하는 거야. 이미 주어진 답을 살아가는 자에게서 어찌 새로운 세계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한기 | 광주 플라톤 아카데미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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