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18명이 금석문 풀어 역사의 공백 메워… 우리의 관심 밖에서 고대사는 어떻게 망가졌나
머나먼 고대가 지금 뜨거운 국제적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한 이론화 작업인 ‘동북공정’을 국가 차원의 사업으로 벌이면서 갑자기 1300~2000년 전 고구려 역사가 중국과 한국의 ‘역사전쟁’의 주제로 떠올랐다.
우리에게 역사전쟁을 치를 무기가 있나
중국은 “현재 중국 영토 내의 한족과 소수민족뿐 아니라 ‘과거’ 중국 강역 내에 살았던 ‘모든’ 민족집단까지 포함하는 것이 중화민족”이라는 ‘중화민족론’을 내세운다. 민족 단위의 영토라는 개념 자체가 겨우 100~200년 전 만들어진 잣대인데 그것으로 몇천년 전 역사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그 움직임은 이론적으로는 황당한 이야기다. 그러나 한반도의 형세변화와 남북통일이 조선족 사회에 초래할 충격, 그리고 그것이 연쇄적으로 중요한 자원들을 품고 있는 변경 지역의 여러 소수민족들을 자극해 중국을 분열로 몰고 갈 위험에 잔뜩 긴장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아마도 이런 작업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올해에도 이 ‘전쟁’은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한 중국과 북한의 경쟁 등으로 계속된다.
‘민족주의’의 허구를 비판하며 국사 해체론과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담론이 활발하게 쏟아지는 흐름 한편에서 한국과 그 주변 나라들은 오히려 각자의 현재에 유리하게 역사를 이용하려는 치열한 ‘전쟁’에 휘말려 있다. 여기에는 국제정세의 변화와 힘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흥분만 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찬찬히 역사를 진솔하게 마주 대하면서 진실의 힘을 찾아 정교한 해석틀과 설득력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의 학자 18명이 쓴 <고대로부터의 통신>(푸른역사)은 그런 의미에서 한번 꼼꼼히 읽어볼 책이다. 이들이 전하는 ‘고대로부터의 통신’은 바로 옛 사람들이 돌에 새긴 금석문이며, 이 책은 금석문을 통해 한국 고대사를 우리 곁으로 데려온다. 뭐하러 잘 보이지도 않는 닳고닳은 옛날 돌을 들여다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 글짜나 그림이 새겨진 돌덩이, 쇳덩이들이야말로 수천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다. 고려시대에 옛 자료들을 모아 편찬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비해 이 돌들은 삼국시대 당시 사람들이 새기고 만들었던 생생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고대사는 기록이 부족해 실상을 알기 어렵다. 논쟁에 휩싸인 고구려의 역사만 해도 70여년에 걸친 수·당과의 전쟁에서 결국 고구려가 패배하자 수도 평양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은 잿더미가 되면서 사라져버렸다. 그렇지만 당시 비석에 남은 짧은 명문을 통해 과거와 대화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료를 하나씩 주워담아 역사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18개의 고대 금석문 중 ‘임나일본부’의 실체를 둘러싸고 한·일 학계가 100년 넘게 논쟁 중인 ‘칠지도’와 ‘광개토왕릉비’, 고구려가 한때 중국 허베이(河北) 지방을 다스렸다는 설을 놓고 중국과 북한이 논쟁을 벌이게 한 ‘덕흥리 벽화고분 묵서명’ 등의 문제를 보면, 한·중·일 동아시아 국가들이 국익을 앞세우며 고대사를 자국에 유리하게 재구성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왔는지를 볼 수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더불어 끈질기게 한국 고대사를 노리는 것이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가야 등 당시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인데, 김태식 홍익대 교수는 일본 학자들이 그 근거로 내세우는 칠지도에 새겨진 글은 1874년 나라현 이소노카미 신궁에서 발견될 때부터 위조 여부를 둘러싸고 의문스러운 점이 있는데다, 연대 측정이나 다른 유물과의 비교 등을 통해 분석해보면 왜가 백제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백제와 왜 사이에 긴요한 외교적 교류가 있었음을 증명할 뿐이라고 설명한다. 살아있는 고대사의 흔적을 만난다 1976년 남포에서 관개수로 공사 중 발견된 ‘덕흥리 벽화고분 묵서명’은 벽화고분의 주인공인 ‘광개토대왕 시대 유주자사(幽州刺史)를 지낸 진(鎭)’의 위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발견 당시 북한 학계는 고구려가 4세기 후반 중국 허베이(河北)와 산시(山西) 지역을 포함한 유주 일대를 지배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라며 몹시 흥분했지만, 현재는 중국 전연(前燕)에서 태어나 유주자사를 지낸 진이 나라가 망하자 고구려로 망명한 인물이라는 중국 학계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역사해석의 결론만을 보여주며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책에 실린 옛 비문의 사진과 내용들, 오랫동안 학자들이 벌여온 논쟁들, 거기에 담긴 사연들을 보면서 역사에 대해 고민하고 상상하며 나름의 해석을 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국사 시간에 교과서에 써 있는 대로 달달 외우기만 할 뿐 역사 속의 삶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가 이제 중국의 주장에 분노하며 ‘고구려는 우리 역사’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은 공허하다. ‘민족국가’라는 현재의 개념으로 ‘고대 이곳이 어느 민족의 역사’라고 싸우기 전에, 정치적인 억지에 어떤 역사적 오류가 있는지, 고대사를 지금과 다른 어떤 역사로 봐야 할 것인지 차분히 반론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고대로부터의 통신』,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 지음, 푸른역사 펴냄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의 학자 18명이 쓴 <고대로부터의 통신>(푸른역사)은 그런 의미에서 한번 꼼꼼히 읽어볼 책이다. 이들이 전하는 ‘고대로부터의 통신’은 바로 옛 사람들이 돌에 새긴 금석문이며, 이 책은 금석문을 통해 한국 고대사를 우리 곁으로 데려온다. 뭐하러 잘 보이지도 않는 닳고닳은 옛날 돌을 들여다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 글짜나 그림이 새겨진 돌덩이, 쇳덩이들이야말로 수천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다. 고려시대에 옛 자료들을 모아 편찬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비해 이 돌들은 삼국시대 당시 사람들이 새기고 만들었던 생생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고대사는 기록이 부족해 실상을 알기 어렵다. 논쟁에 휩싸인 고구려의 역사만 해도 70여년에 걸친 수·당과의 전쟁에서 결국 고구려가 패배하자 수도 평양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은 잿더미가 되면서 사라져버렸다. 그렇지만 당시 비석에 남은 짧은 명문을 통해 과거와 대화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료를 하나씩 주워담아 역사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18개의 고대 금석문 중 ‘임나일본부’의 실체를 둘러싸고 한·일 학계가 100년 넘게 논쟁 중인 ‘칠지도’와 ‘광개토왕릉비’, 고구려가 한때 중국 허베이(河北) 지방을 다스렸다는 설을 놓고 중국과 북한이 논쟁을 벌이게 한 ‘덕흥리 벽화고분 묵서명’ 등의 문제를 보면, 한·중·일 동아시아 국가들이 국익을 앞세우며 고대사를 자국에 유리하게 재구성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왔는지를 볼 수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더불어 끈질기게 한국 고대사를 노리는 것이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가야 등 당시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인데, 김태식 홍익대 교수는 일본 학자들이 그 근거로 내세우는 칠지도에 새겨진 글은 1874년 나라현 이소노카미 신궁에서 발견될 때부터 위조 여부를 둘러싸고 의문스러운 점이 있는데다, 연대 측정이나 다른 유물과의 비교 등을 통해 분석해보면 왜가 백제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백제와 왜 사이에 긴요한 외교적 교류가 있었음을 증명할 뿐이라고 설명한다. 살아있는 고대사의 흔적을 만난다 1976년 남포에서 관개수로 공사 중 발견된 ‘덕흥리 벽화고분 묵서명’은 벽화고분의 주인공인 ‘광개토대왕 시대 유주자사(幽州刺史)를 지낸 진(鎭)’의 위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발견 당시 북한 학계는 고구려가 4세기 후반 중국 허베이(河北)와 산시(山西) 지역을 포함한 유주 일대를 지배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라며 몹시 흥분했지만, 현재는 중국 전연(前燕)에서 태어나 유주자사를 지낸 진이 나라가 망하자 고구려로 망명한 인물이라는 중국 학계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역사해석의 결론만을 보여주며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책에 실린 옛 비문의 사진과 내용들, 오랫동안 학자들이 벌여온 논쟁들, 거기에 담긴 사연들을 보면서 역사에 대해 고민하고 상상하며 나름의 해석을 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국사 시간에 교과서에 써 있는 대로 달달 외우기만 할 뿐 역사 속의 삶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가 이제 중국의 주장에 분노하며 ‘고구려는 우리 역사’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은 공허하다. ‘민족국가’라는 현재의 개념으로 ‘고대 이곳이 어느 민족의 역사’라고 싸우기 전에, 정치적인 억지에 어떤 역사적 오류가 있는지, 고대사를 지금과 다른 어떤 역사로 봐야 할 것인지 차분히 반론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