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에 도전… 아무리 개인의 패션 취향을 존중할지라도
그날 밤 나는 서울 홍익대 앞 ‘grappa’라는 바에서 완전히 방심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그것도 네 남자 사이에…. 누워서 뭘 했냐 하면, 국제 깡패 부시가 쑥대밭을 만들어놓은 이라크의 최근 모습을 찍은 다큐멘터리 사진전을 영사기를 통해서 봤다. 요즘 내가 곧잘 함께 어울리고 있는 아트 패거리들이 ‘구라빠’라고 부르는 이곳엔 한쪽 벽면에 커다란 평상 같은 게 놓여 있었는데, 누군가의 제안으로 사진전을 보는 동안 우리는 그 평상 위에 아예 드러눕게 된 것이다.
그런데 30분쯤 지나자 허리도 뻐근하고 좀 지루하다는 생각이 슬쩍 밀려올 무렵이었다. 느닷없이 내 옆에 누워 있던 화가 강영민이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그의 사각 ‘빤스’를 보는 순간 “아니 이 인간이 미쳤나?” 싶어 화들짝 놀라고 있는데, 강영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히 바지를 벗고 윗도리를 벗었다. 그러자 느닷없이 땡땡이 무늬가 들어간 원피스 차림이 됐다. 불뚝 솟아오른 뱃살과 털이 무성한 종아리 아래 짝이 다른 등산양말을 신고 있는 걸 보며 사람들은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강영민은 그 해괴망측한 차림으로 일어서서 한 손에 술병을 든 채 슬라이드 쇼가 끝날 때까지 무심히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슬라이드 쇼가 끝나자 누군가 강영민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 저놈의 아티스트 정신, 정말 못 말린다니까.” 그러자 강영민이 대답했다. “재밌잖아. 이게 실은 병이야.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지루해하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거든. 그래서 나도 피곤해 죽겠어.”
사실 본인은 피곤한지 모르겠지만 보는 나는 신이 나서 죽을 것 같았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이제 한국에도 ‘복장 도착자 화가가 등장할 때’가 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영국에서는 전통적인 도자기 위에 변태 같은 그림을 그리는 그레이슨 페리라는 작가가 분홍색 공단 원피스를 입고 나와 터너상을 수상했는데, 그 영국적인 재치에 비하면 우리는 한발 늦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게다가 그는 강영민의 일회적 이벤트와 달리 진짜 복장 도착자다. 그런데 여자 옷을 입는 이유에 대해서 기자들이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존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자 옷을 입으면 2류처럼 보이는데, 도예 역시 2류처럼 보입니다.”
오는 2월8일부터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치마는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도전으로서 ‘브레이브 하트: 치마 입은 남성들’이라는 전시회가 열린다는데, 지금 전시장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미술계의 복장 반란에 비하면 메시지는 약하지만 역시 대단한 볼거리라고 할 수 있다. 남자가 치마를 입고서도 수컷으로서 저렇게 섹스어필할 수 있다니…. 한편 이 전시에서 특급 디자이너들의 스커트를 입은 남자 모델들이 조금도 2류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좀 재미가 덜한 것도 사실이다.
요즘은 게이도, 변태도, 그리고 아티스트도 아닌 평범한 남자들이 인터넷 카페에 모여 자기들도 치마를 입게 해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고 한다. 뭐, 예쁘고 편한데다 통풍이 잘 돼서 사타구니 낭습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나? 그저 한 개인의 패션 취향으로서 존중해달라고 하는데, 솔직히 내 남자친구 일이 아니라면 특별히 말릴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아티스트나 패션모델이라면 모를까 아직까지 치마 입은 남자는 사회적 조롱의 대상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내 남자친구가 정히 입고 싶어한다면 파티장과 내 침실에서만 몰래 살짝 입으라고 달래고 싶다.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요즘은 게이도, 변태도, 그리고 아티스트도 아닌 평범한 남자들이 인터넷 카페에 모여 자기들도 치마를 입게 해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고 한다. 뭐, 예쁘고 편한데다 통풍이 잘 돼서 사타구니 낭습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나? 그저 한 개인의 패션 취향으로서 존중해달라고 하는데, 솔직히 내 남자친구 일이 아니라면 특별히 말릴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아티스트나 패션모델이라면 모를까 아직까지 치마 입은 남자는 사회적 조롱의 대상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내 남자친구가 정히 입고 싶어한다면 파티장과 내 침실에서만 몰래 살짝 입으라고 달래고 싶다.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