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책 하나에 울고 웃는 코리안시리즈… 승부는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것
한국시리즈가 끝났다. 지장 김재박(현대)과 덕장 김인식(두산)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2000한국시리즈는 두산이 3연패 벼랑에 몰리면서도 막판 3연승으로 기적같이 회생해 전례없는 관심을 모았다. 우승 반지는 결국 올 시즌 최고 승수로 정규 시즌 1위를 기록했던 현대에 돌아갔지만 준우승팀 두산도 아쉬움 없이 벌린 한판이었다.
“우즈만 아니었어도…”
김인식 두산감독은 경기 종료 뒤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아쉬움을 무척 토로 했다. 김 감독은 자칭 ‘딴따라’ 감독으로 소문나 있는데 연예계에 지인들이 많아 술자리에도 일을 마다 않고 달려와 위로하는 이들이 많았다. 김인식 감독은 준우승의 한이 풀리지 않다가 원로 여가수의 노래를 듣고는 그제야 굳은 얼굴을 풀었다. 각설하고. 아뭏튼 김인식 감독이 아쉬워했던 순간은 마지막 7차전이 아니었다. 2연패 뒤 3차전에서 외국인 선수 1루수 우즈의 어이없는 실책 때문이었다. 김인식 감독은 “그 실책만 아니었어도 어떻게 좋은 결과를 기대해볼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애궂은 담배만 연신 피워댔다.
한수에 승부가 결정된다. 수많은 수 중에서 미처 예상치 못한 상대의 한수에 대국 전체의 흐름이 뒤집어진다. 이 한수는 때때로 자기 진영에서 나오기도 하는데 도대체 말릴 수가 없는 것이다. 제아무리 명장이라도 ‘자살골’은 도리가 없다. 대부분의 큰 승부가 실책 때문에 가름 난다. 19차례의 한국시리즈는 어김없이 이러한 승부의 진리를 여러 가지 색깔로 복제해왔다. 한국시리즈 3차전으로 되돌아 가보자. 정규 시즌서 마무리로 뛰다 선발로 돌아선 진필중이 1회부터 연속 안타로 흔들렸다. 현대 외국인 타자 카펜터가 때려낸 1루 땅볼을 잘 잡아놓고도 1루로 뛰어들던 진필중에게 건네는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당시 대부분의 야구인들은 시리즈 전 내년시즌 재계약 해지통보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1루까지 전력 질주하던 카펜터의 파인플레이에 박수를 보냈으나 결과적으로는 우즈의 잘못이었다. 우즈는 공을 잡은 뒤 충분히 2루로 먼저 던져 리버스 병살플레이(선행 주자를 먼저 아웃시킨 뒤 타자 주자를 잡아냄)를 해낼 수 있었으나 주춤거리다 만루 상황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결국 몸에 맞은 공과 희생 플라이로 2점을 내주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셈. 우즈는 1-2로 뒤져 역전을 노려볼 상횡이던 5회에도 1사 1루서 박종호의 타구를 놓쳐 한점을 더 내줬다. 실수는 버릇된다고 했던가. 투-타에서 최고를 자랑하며 내달려오던 현대 선수단이 ‘어쩌면 우리가 한국시리즈에서 패할지도 모른다’는 패배의식에 깊숙이 빠져들었던 때는 6차전 직후였다. 국내 최고 2루수를 자랑하는 박종호가 전부 실점의 단초가 된 실책 3개를 저질렀다. 박종호의 이날 3실책은 포스트 시즌 한 경기 최다실책 타이기록이었다. 4회 타석에는 두산 강혁. 시리즈 내내 무안타로 부진하던 강혁이 잡기 좋은 평범한 2루 땅볼을 때려냈다. 그러나 공은 글러브에 맞고 뒤로 떼굴떼굴 굴러갔다. 선발 정민태는 이후 연타를 맞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한번 실수는 병가상사. 박종호는 어쩌면 글러브를 바꾸거나, 아니면 교체됐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시리즈 6차전의 박종호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7회 2사 1루서 이번에도 타석에는 강혁. 때려낸 공이 박종호 앞에서 불규칙하게 튀어오르며 중견수 앞으로 굴러갔다. 박종호가 입을 떡 벌린 것은 4-4로 맞선 9회. 1사 1루서 심정수가 때려낸 유격수 땅볼을 박진만이 안전하게 박종호에게 던졌고 이어 1루수 이명수에게 중계돼 회심의 병살플레이를 노렸으나 공은 원바운드로 1루쪽 펜스까지 굴러가 두명의 주자가 모두 들어왔고 현대는 패했다. 앞서 열거한 예는 빙산의 일각에 그친다. 박종호는 6차전을 저주의 날이라 생각하고 베개 붙잡고 울었을지 모르지만 현대는 결국 7차전을 승리하지 않았는가. 한국시리즈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 포스트 시즌의 승패를 좌우한 사례들
역대 포스트 시즌에서 수비 하나로 팀의 운명이 좌지우지된 경우를 살펴보자. 14년 전, 1987년 플레이오프에서 OB는 유지훤(현 두산 코치)의 수비 실수 때문에 어쩌면 우승을 놓쳤는지도 모른다. OB는 당시 해태에 3차전까지 2승1패를 거두고 있었다. 한 경기만 더 이기면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OB는 4차전에서 9회 초까지 3-2로 앞서고 있었다. 운명의 9회 말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9회 말 수비 1사 2루서 유격수 유지훤은 해태 김성한의 평범한 땅볼을 뒤로 물러나며 잡다 내야 안타를 만들어줘 결국 역전패의 빌미가 됐다. 기세가 오른 해태는 다음날 5차전에서 OB를 꺾고 그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89 한국시리즈는 빙그레(현 한화) 유격수 장종훈의 실책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빙그레는 1차전 승리 뒤 2차전서도 4-2의 리드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3회 1사 만루서 백인호의 타구를 장종훈이 뒤로 빠뜨리면서 동점을 내줬고 빙그레는 내리 4연패하며 준우승의 설움을 맛봐야 했다. 병살타성 타구 처리의 좋은 찬스가 동점을 허용하는 악수로 변했고 결과는 한국시리즈 패배로 끝났다.
또 하나의 실수, 95년 한국시리즈에 오른 OB는 롯데에 2승3패로 뒤져 사실상 롯데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6차전서 지금은 특급 마무리 투수지만 당시 신예에 불과 했던 진필중이 완투승을 따내며 마지막 승부까지 이어졌다. 7차전에서 OB에 우승을 헌납한 이가 롯데 2루수 박정태. OB는 2-1로 한점차의 어려운 리드를 잡고 있었으나 상대의 결정적인 패착이 이어져 원년 이후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6회 2사 2·3루서 OB의 공격. 김종석이 때려낸 2루 땅볼을 잡으려던 박정태가 서두르다 뒤로 빠뜨렸고 3루주자는 귀중한 추가점을 기록했다. 최종스코어는 4-2. 박정태의 실수 하나가 그대로 최종 점수로 굳어졌다. 한국시리즈는 실수한 자에게 잔인한 벌을 내린다.
고참들의 실수는 적다, 그러나
포스트 시즌은 수비 강한 팀이 이긴다는 속설이 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왜 그럴까. 우선 시리즈서 만나는 양팀은 대개 7차전의 승부를 펼치기에 앞서 1∼3선발까지를 준비해 놓는다. 여간해서는 호쾌한 타력전이 펼쳐지기가 어렵다. 팀내 마운드서 다소 떨어지는 4, 5선발은 중간계투로 돌아선다. 그만큼 한 경기, 한 경기에 마운드 총력전이 펼쳐지기 때문에 내야수들이 잔뜩 긴장하게 마련이다. 특히 선발투수가 5회 정도까지 책임지고 내려간 뒤에는 언제 어느 순간에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스퀴즈번트와 히트 앤드런 등에 대비하기 위한 덕아웃의 사인이 쉴새없이 나오고 내야수들의 몸은 굳어진다. 정규 시즌 1경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시리즈사를 뒤적여보면 역시 확률상으로도 고참들의 실수는 적다. 80년대 후반 최고 전력으로 평가되던 빙그레의 장종훈은 당시 연습생 신화를 달고 막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신예였다. 박정태도 입단한 뒤 프로생활 3년 만에 처음 맞이한 포스트 시즌이었다. 그러나 이제 3년밖에 되지 않은 현대 투수 김수경이 노장 조계현과의 마지막 승부를 이겨낸 것은 또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박종호는 이제 고참 대열로 접어들어가는 완숙한 경지의 선수다. 19년간의 한국시리즈는 결국 승부의 예측불가성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사례로 보인다.
김성원/ 스포츠투데이 야구부 기자

(사진/이번 한국시리즈의 승패는 실책에 의해 결정 됐다.2루에 송구된 볼을 놓치고 안타까워하는 두산의 김민호)
한수에 승부가 결정된다. 수많은 수 중에서 미처 예상치 못한 상대의 한수에 대국 전체의 흐름이 뒤집어진다. 이 한수는 때때로 자기 진영에서 나오기도 하는데 도대체 말릴 수가 없는 것이다. 제아무리 명장이라도 ‘자살골’은 도리가 없다. 대부분의 큰 승부가 실책 때문에 가름 난다. 19차례의 한국시리즈는 어김없이 이러한 승부의 진리를 여러 가지 색깔로 복제해왔다. 한국시리즈 3차전으로 되돌아 가보자. 정규 시즌서 마무리로 뛰다 선발로 돌아선 진필중이 1회부터 연속 안타로 흔들렸다. 현대 외국인 타자 카펜터가 때려낸 1루 땅볼을 잘 잡아놓고도 1루로 뛰어들던 진필중에게 건네는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당시 대부분의 야구인들은 시리즈 전 내년시즌 재계약 해지통보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1루까지 전력 질주하던 카펜터의 파인플레이에 박수를 보냈으나 결과적으로는 우즈의 잘못이었다. 우즈는 공을 잡은 뒤 충분히 2루로 먼저 던져 리버스 병살플레이(선행 주자를 먼저 아웃시킨 뒤 타자 주자를 잡아냄)를 해낼 수 있었으나 주춤거리다 만루 상황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결국 몸에 맞은 공과 희생 플라이로 2점을 내주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셈. 우즈는 1-2로 뒤져 역전을 노려볼 상횡이던 5회에도 1사 1루서 박종호의 타구를 놓쳐 한점을 더 내줬다. 실수는 버릇된다고 했던가. 투-타에서 최고를 자랑하며 내달려오던 현대 선수단이 ‘어쩌면 우리가 한국시리즈에서 패할지도 모른다’는 패배의식에 깊숙이 빠져들었던 때는 6차전 직후였다. 국내 최고 2루수를 자랑하는 박종호가 전부 실점의 단초가 된 실책 3개를 저질렀다. 박종호의 이날 3실책은 포스트 시즌 한 경기 최다실책 타이기록이었다. 4회 타석에는 두산 강혁. 시리즈 내내 무안타로 부진하던 강혁이 잡기 좋은 평범한 2루 땅볼을 때려냈다. 그러나 공은 글러브에 맞고 뒤로 떼굴떼굴 굴러갔다. 선발 정민태는 이후 연타를 맞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한번 실수는 병가상사. 박종호는 어쩌면 글러브를 바꾸거나, 아니면 교체됐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시리즈 6차전의 박종호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7회 2사 1루서 이번에도 타석에는 강혁. 때려낸 공이 박종호 앞에서 불규칙하게 튀어오르며 중견수 앞으로 굴러갔다. 박종호가 입을 떡 벌린 것은 4-4로 맞선 9회. 1사 1루서 심정수가 때려낸 유격수 땅볼을 박진만이 안전하게 박종호에게 던졌고 이어 1루수 이명수에게 중계돼 회심의 병살플레이를 노렸으나 공은 원바운드로 1루쪽 펜스까지 굴러가 두명의 주자가 모두 들어왔고 현대는 패했다. 앞서 열거한 예는 빙산의 일각에 그친다. 박종호는 6차전을 저주의 날이라 생각하고 베개 붙잡고 울었을지 모르지만 현대는 결국 7차전을 승리하지 않았는가. 한국시리즈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 포스트 시즌의 승패를 좌우한 사례들

(사진/수원구장에서 벌어진 7차전에서 현대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선수들이 마운드로 뛰어나와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사진/두산의 김인식 감독은 우즈의 실책을 가장 아쉬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