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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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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1-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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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 한씨연대기

1월8일~2월29일 서울 동숭아트센터 소극장(02-762-0010)

동숭아트센터의 야심찬 프로젝트 ‘연극 열전’을 열어젖히는 개막작. 1980년 초연된 <한씨연대기>는 황석영의 동명 소설을 무대화한 것으로 당시엔 주제의 치열함 외에도 역할 바꾸기라는 새로운 연출법이 선보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김일성대학 의학부 교수로 잘나가던 의사 한영덕이 6·25 때 단신 월남해 점점 인생의 하향곡선을 그리다 끝내 장의사로 쓸쓸한 생을 마치는 이야기다. “20년 전 분단 이야기가 아직도 시효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연출자 김석만은 “지나간 연극은 모두 시효가 지났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며 여유롭게 받아친다. 사실주의적인 극의 전개보다는 절제된 미니멀리즘으로 다가가 시대와 상황을 넘어서는 감동을 주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개봉한 <실미도>에서 설경구보다 강렬한 눈빛으로 스크린을 사로잡았던 배우 강신일, 감칠맛 나는 연기의 이대연 등이 출연한다. 극단 연우무대.


연극 | 오픈 커플

2월22일까지 서울 대학로 소극장 축제(02-741-3934, 765-4891)

자유는 남녀관계의 환상일까. 다리오 포 원작의 <오픈 커플>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희생되는 의무와 책임의 문제를 건드린다. 아내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수많은 애인과 어울리는 남편은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오픈 커플’이 되자고 제안한다. 처음에 아내는 교묘하고도 뻔한 수작에 휘둘리다가 이내 역습에 나선다. 결혼이라는 제도의 환상과 모순을 지적하기보다는, 그 제도를 끊임없이 비틀고 왜곡하는 개인의 이중성에 초점을 맞췄다. 1980년대 이탈리아에 불어닥친 성 개방 풍조와 이혼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가톨릭 국가의 특수한 상황에서 <오픈 커플>이 태어났던 것인 만큼, 이혼율이 높고 부부윤리가 급속히 해체되어 ‘오픈 커플’을 실천하는 부부가 증가하는 우리 현실에서는 오히려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다. <야단법석> 등 전통적 색채가 묻어나는 퓨전극을 선보인 서상규가 연출했으며, 실감나는 사투리 연기를 펼치는 서현철과 춤과 노래, 연기 모두 다재다능한 김태리가 부부로 나온다. 극단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

전시 | 오리가미! 환상과 동심의 세계로 - 일본 전통종이예술전

2월2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02-3991-700~6, 031-929-5571)

오리가미란 종이접기를 뜻하는 일본어다. 우리나라에서 종이접기는 아직 어린이들의 두뇌개발 놀이 정도로 생각되기 쉬운데, 일본에선 오리가미가 일찍부터 빼어난 정교함과 작품성으로 전통적인 종이 예술로 각광받아왔다. 특히 우리나라 한지에 해당하는 일본의 화지(和紙)는 색깔과 질감이 뛰어나 오리가미 같은 종이예술을 펼치는 데 적격으로 사랑받아왔다. 이번 전시를 주관하는 도쿄의 유시마노고바야시 오리가미회관의 고바야시 관장은 4대째 150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장인이자 예술인으로 오리가미의 정수를 보여준다.

전시는 ‘조선통신사 행렬’ ‘쥐라기공원·동물농장’ ‘일본 전통풍물’ ‘종이회화’ 등으로 나누어 구성했는데, ‘조선통신사 행렬’은 약 7m에 달하는 대형 작품으로 당시 대규모 행렬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조선통신사의 의의와 이동 경로 등 상세한 역사자료도 준비했다. 종이로 재현한 쥐라기공원, 섬세하게 만든 공룡과 여러 동물들이 어우러진 종이동물원은 동물 한 마리 한 마리의 섬세한 표현이 뛰어나다. 200개 이상의 화지 인형과 종이 장식물로 이루어진 ‘에도의 길거리’는 일본 에도시대 후기 서민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화지를 가늘게 찢어 붙여 만든 ‘기리에 기법’의 종이회화 작품도 선보인다.

전시 | 갑신년 잔나비띠 기획전

2월9일까지 서울 국립민속박물관(02-734-1346, 720-3138)

원숭이의 별칭 혹은 옛말인 잔나비는 ‘날쌔다’를 뜻하는 ‘재다’와 원숭이를 의미하는 ‘납’이라는 명사가 합쳐진 말이다. <서유기>의 손오공처럼 잔나비는 빠르고 영민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날쌔기 때문에 덜렁대거나 어리석은 실수도 범한다. 도토리를 아침에 세개, 저녁에 네개 준다고 불평하다가 아침에 네개, 저녁에 세개 준다고 하니 좋아하더라는 고사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주인공도 원숭이다. 또한 12간지에서 원숭이는 재앙을 막아주며 소망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갑신년을 맞아 우리 유물 속에 등장한 원숭이들을 조명하는 자리. 통일신라시대 유물인 ‘청동제십이지추’를 비롯해 모두 40여점의 원숭이 관련 유물이 선보인다. 먹이를 탐하다 덫에 걸린 원숭이를 예로 들며 탐욕을 경계하는 <신정심상소학>(新訂尋常小學·1896년), 봉산탈춤에서 신장수를 조롱하는 역할로 등장하는 원숭이탈, 경주 김유신 묘를 수호하는 원숭이상의 탁본, 원숭이가 복숭아를 따먹는 그림이 묘사돼 있는 조선 후기 유물 ‘철제은입사함’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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