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건물 안을 걸어가는 Wret Y(예명·15)의 뒷모습(왼쪽). Wret Y가 지난해 쓴 일기. Wret Y 제공
하긴 내가 자해했을 때 칼 들고 찾아와서 그럴 거면 차라리 죽으라 했으니. 도대체 내가 얼마나 무너져야 그만할까. 내가 날 탓하며 죽으면 그만해줄 거야? 이 일기 발견되면 태워버리겠지. 아무나 날 외면하지 않았으면 내가 이렇게 미치진 않았겠지. 아동보호 전문기관 거기서 날 더 나락으로 밀어버린 거네. 새삼 존나 좆같다. 죽고 싶어.” 중학생 ‘Wret Y’(15·예명)의 일기장에 남은 지난해 ‘어느 죽고 싶은 날’의 기록이다. Wret Y는 한가위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기숙사로 가”(엄마), “짐승새끼”(아빠), “시설 같은 데 버려”(오빠)…. 자해하는 Wret Y를 향한 가족의 반응을 보면, Wret Y는 ‘날 때부터 문제아’였던 것 같다. 문제아, 자해하는 청소년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이고 가장 흔한 오해다. 정반대로 Wret Y는 어릴때부터 뭐든지 잘하는 아이, 말하자면 ‘엄친딸’(뭐든지 잘한다는엄마 친구 딸)이었다. Wret Y는 지난 10월2일 <한겨레21> 인터뷰에서 화려했던 초등학생 시절을 떠올렸다. 부모의 기대는 끝이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학원에서 나가래서 준비도 안 하고 수학 경시대회에 나갔는데 전국권(전국에서 상위권)에 들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는 학원에서 나가래서 수학 올림피아드 나갔고 거기서도 성적이 좋았죠. 스키도 처음 탈 때부터 중급에서 탈 수 있었고, 수영도 배드민턴도 탁구도 배우자마자 잘했어요. 운동하면 운동 잘하고, 악기 배우면 악기 잘 다루고, 지티큐(GTQ·그래픽기술자격시험) 2급을 초등학교 6학년 때 땄어요. 근데 엄마 아빠가 너무 기대하니까… 아무것도 안 하게 되더라고요. 인간의 능력에 한계치가 있는데 그걸 뛰어넘기 바라시니까… 좋아하는 게 있어도 포기하게 되는 그런 거.”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인 Wret Y의 부모는 교육열이 높았다. 어릴 때부터 학원이라는 학원은 다 보냈다. “저랑 오빠가 좋아서 한 게 아닌데, 밖에 나가선 우리한테 못 해준 게 없다는 듯이 자랑을….” 지금도 부모님이 “해달라는 거 다 해줬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주장하는 근거다. 수학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건 7살 때부터다. Wret Y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 초등학교 6학년 때 고교 수학인 ‘수Ⅱ’를 배울 정도로 진도가 빨랐다. 영재고에 가려는 아이들이 밟는 선행학습 코스다. 겉으론 모두가 부러워하는 엄친딸이었지만 Wret Y는 터져버릴 듯한 답답함을 자주 느꼈다. “똥 싸다 중간에 끊긴 느낌… 더 싸고 싶은데 나오지 않는 느낌이에요. 아, 얼마나 짜증이 나느냐면요, 2~3일 동안 생리혈이 없어서 생리 끝난 줄 알고 생리대 안 하고 흰 바지 입고 나왔는데 갑자기 생리가 다시 터진 그런 기분이에요. 딱 그런 느낌이에요! 그럴 때 자해를 하면 ‘이너 피스’(내면의 평화)….” 부모님이 “우리 애는 천재가 아닌가 몰라” 자랑하고 다니던 그 무렵이다. Wret Y는 “되게 어릴 때부터 힘든 일이 있으면 습관적으로” 자해를 했다고 했다. 손톱을 뜯거나 머리를 쥐어뜯거나 책모퉁이로 피부를 ‘슬라이스’(베는) 하는 행동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커터칼을 손에 쥐고 ‘리스트컷’(손목긋기)을 시작했다. “자해는 하면 할수록 효과가 없어지고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오면 내가 했던 행동(자해)이 민망하고 후회되는데 그냥 습관적으로….” 리스트 컷은 올해 초까지 이어졌다. 황준원 강원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설명했다. “흔히 문제아들만 자해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공부 잘하고 전교 회장인데도 자해를 한다. ‘도대체 네가 왜 자해를 하니?’ 어른들이 보기엔 이해가 안 가는 아이들인데, 그 아이들은 잘하면 잘할수록 목표가 올라가기 때문에 공부를 잘한다고 스스로 만족할 수있는 게 아니다. 공부 잘하는데 자존감이 낮고 자해하는 아이를 흔히 보게 된다. 공부를 잘하면 모든걸 잘하리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감정을 조절하는 데는 취약할 수 있다. 공부는 잘하지만 자신이 완벽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안감을 조절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4년여 동안 Wret Y의 자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시험 성적은 감출 수 없지만 자해 흔적을 감추는 것은 너무도 쉬웠다. 자해했다고 말하지 않고, 여름에도 긴팔 옷을 입고 다니면 그만이었다. 자녀의 성적에는 예민하지만 자녀 몸의 상처에는 이상하리만치 둔감한 부모…. 이 역시 자해하는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모들의 무신경이다. Wret Y는 “살짝 불안해서 손톱 물어뜯는 거랑 달리, 자해로 손톱을 물어뜯은 건 딱 봐도 손톱이 너무 짧다. 또 문 잠긴 아이 방에서 자꾸 둔탁한 소리, 딸각거리는 소리가 나면 백퍼(센트) 자해”라고 귀띔했다. ‘네가 도대체 왜?’ 부모의 공격
자해 청소년 도움받을 수 있는 곳
1) 청소년 위기 문자 상담 시스템 ‘다 들어줄 개’
안드로이드 구글 플레이,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다 들어줄 개’ 앱 내려받기
카카오톡 ‘다 들어줄 개’ 플러스 친구 맺고 상담 가능
페이스북 메신저 ‘다 들어줄 개’로 상담 가능
1661-5004 번호로 문자 상담 가능
2) 24시간 전화 상담
자살예방핫라인 1577-0199
청소년 전화 1388
보건복지콜센터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3) 공공 청소년 상담기관: 각 누리집에서 해당 지역 검색
전국 Wee센터 www.wee.go.kr
전국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www.kyci.or.kr
전국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무료 상담 가능)
www.nmhc.or.kr
*성남시 소아청소년정신건강복지센터 (031-751-2445) www.withchild.or.kr
*고양시 소아청소년정신건강복지센터 (031-908-3567~8)
www.goyangwithus.co.kr
4) 의료기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kacap.or.kr에서 해당 지역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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