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해. 문제아를 둔 남의 집 일로만 알고 신경도 안 썼는데, 내 아이가 자해를 하고 있었다면? (교육부의 올해 초 조사 결과 중고생 최소 7만 명이 자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나 ‘기우’가 아니다.) 충격과 공포가 밀려올 테고 어쩔 줄 모를 것이다. 심지어 공부 잘하고 친구 잘 사귀고 ‘부모의 자랑’이던 아이가 부모 몰래 자해를 하고 있었다면? 아이가 자해에 이르기까지 받은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부모도 큰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감에 압도될 것이다.
부모를 더욱 두렵게 하는 건 자해의 지속성이다. 아이가 자해를 완전히 멈추게 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최근 자해 치료법으로 각광받는 변증법적행동치료(DBT) 창시자인 마이클 홀랜더 교수는 저서 <자해 청소년을 돕는 방법>에서 “이 치료법을 실시하는 3~6개월 안에 자해가 줄어들었다(‘멈췄다’가 아니다). 모든 치료는 몇 걸음 전진과 한 걸음 후퇴를 반복하는 과정임을 기억하라”고 조언했다. <한겨레21>이 만난 아이들 중엔 초등 3~4학년 때부터 고교 혹은 대학 때까지 자해가 ‘현재진행형’인 사례도 많았다.
부모의 노력에도 자해를 그만두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상당수 부모는 좌절하고 절망한다. 부모로서 자존감은 땅에 떨어지고 지금까지 했던 모든 부모 역할을 회의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절망한 부모는 만사를 팽개치고 아이의 자해를 멈추게 하는 데만 매달리거나, 정반대로 상황을 회피하며 아이를 포기한 채 다른 활동에 몰두하기도 한다.
부모가 먼저 이렇게 심리적으로 무너지면 아이는 자해를 멈추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안정’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홀랜더 교수가 “자해하는 아이가 부모와 대화하면 불안이 높아지고, 점점 감정 조절 불능 상태가 되어갈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아이에게 치료자와 연락할 수 있다고 조용히 상기시켜주라”고 말한 이유다.
<한겨레21> ‘청소년 자해 3부작’ 중 2부는 ‘자해를 모르는 데서 오는 두려움’을 덜어주려 기획됐다. ‘착한 반장 딸’의 자해를 4년간 함께 겪으며 변화해온 엄마의 이야기 속에서 위로를, 자해 발각 뒤 ‘천재 엄친딸’에서 ‘짐승새끼’가 된 고통을 호소하는 딸을 통해 교훈을 찾기 바란다. 정신과 전문의들의 조언은 자해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바로잡고 부모와 아이들이 지난한 자해 치유의 첫발을 내딛도록 안내할 것이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허서현(17·가명) 엄마, 자해한다는 건 그만큼 외롭다는 거야. 친구들로는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이 있는데, 그게 자해로는 일시적으로 채워져. 그러니까 계속하는 거고. 자해는 외로웠을 때 내 추억이야. 절대 지울 생각이 없어. 어쨌든 내가 이제 ‘자해 안 하겠다’고 생각하면 된 거 아니야. 엄마 서현아, 엄마의 걱정이 기우인가? 휴대전화에 자해 동영상 있으면 네가 그거 보고 또 하고 싶으면 어쩌나 걱정인데…. 너 그거(자해 상처) 기자님 더 보여드려, 여기서부터 여기. (눈 흘김) 서현 이거 팔찌라고 하거든요. 팔찌 한 건데. 기자 팔찌요? 서현 (자해 상처로) 팔 한 바퀴 쫙 두르는 거. 엄마, 근데 이제 자해 동영상 봐도 별로 안 하고 싶어. 봐도 아무 생각 안 들어. ‘내가 이런 걸 했구나’ 정말 그게 다야. 여행 가서 사진 찍어온 추억처럼.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아니 ‘노력을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한다니까. 상처를 긍정하게 된 딸 11월2일 저녁 동대구역 근처 커피숍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한 서현 모녀는 ‘서현의 자해’라는 심각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내내 잡담하듯 화기애애했다. 자녀가 자해를 하고 부모는 놀라서 숨 넘어가는 영화 속 ‘클리셰’(상투적인) 장면은 없었다. 모녀는 두 손을 꼭 잡고 웃으며 인터뷰 장소에 걸어나왔고, 인터뷰를 마친 뒤 다시 두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서현 엄마가 이렇게 담담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서현의 자해를 ‘발견’한 4년 전 그날 이후, 서현이 자해와 입원·퇴원을 반복하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 속에서도 엄마는 결코 딸을 놓지 않았다. 서로 꼭 붙어 견뎌온 지난 세월이 어느덧 모녀의 깊은 상처에 딱지를 만들고 새살이 돋아나게 하는 중이었다. 모녀가 끈기 있게 대화하고 치료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간 지난 4년의 이야기는, 다른 자해하는 청소년 부모에게도 소중한 간접경험이 될 것이다. 서현 모녀의 지금 모습은, 아마도 자해하는 아이와 부모가 그토록 바라는 ‘미래’일 것이기 때문에. 기자 서현은 언제부터 자해를 시작했어요? 서현 그전에 했던 건 자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칼을 댄 게(손목긋기·리스트컷) 자해라면 중학교 1학년? 엄마 우리 여행 갔다 와서 경찰 왔을 때, 그 자해가 처음이야? 서현 그보다 한 달 전쯤에 시작했는데. 그때 한창 인터넷이랑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많이 했는데 우연히 트위터에서 자해 계정을 본 거예요. 그전엔 스트레스 받으면 손톱으로 살을 긁어서 딱지 만드는 정도였는데. 그것도 자해라면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그때는 공부하기가 너무 싫었어요. 진짜 학원을 많이 다녔는데, 자주 째고 그랬어요. 기자 어머님이 서현이 공부 많이 시키셨나봐요? (웃음) 엄마 수성구(대구의 강남) 학부모잖아요. 서현이 이런 문제를 나타내기 전에는 워낙 삼 남매 공부에 관심 많았으니까, 학원 많이 보냈죠. 양육의 중심은 학원 보내고 공부 시키는 데 있었죠. 서현이 이런 문제를 보이면서, 서현의 남동생(서준·가명)에게는 ‘공부도 할 놈이 하고 못할 놈은 못한다’는 마음으로 별로 강요 안 해요. 엄마가 전보단 서준한테 공부하라고 안 하잖아, 그치? 서현 제가 자해 계정을 운영했는데, 아! 팔로어가 늘어가는 기쁨이란. 팔로어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 늘어요. 심하게 자해한 사진 같은 거 올리면 확 늘어요. 제가 한때 팔로어 500명 됐거든요. 팔로어 늘리려고 보디스티치도 하고…. 누가 나한테 관심을 가져줬구나 싶죠. 사실 답답할 때 자해하면 생각보다 별로 안 아프고, 그걸 찍어 올리면서 위로받는 거죠. 기자 보디스티치가 뭐예요? 서현 (웃음) 말 그대로예요. 바늘에 실 꿰어서 몸에 스티치(바늘땀)를! 엄마 어우 야아~. 기자 부모님이 공부를 많이 시키신 건 서현한테 관심이 많으셨다는 뜻일 텐데, 부모님 관심만으론 부족했나봐요. 서현 그때가 딱 안 좋은 시기였어요. 아빠가 너무 바쁠때 인데, 엄마가 도와주시느라 바빠서 저희한테 신경을 잘 못 쓰셨어요. 엄마 남편 일에 같이 ‘올인’(다 걸기) 하면서 바빴어요. 서현도 초등 고학년이니 잘할 거라고 생각했죠. 전화로 “학원 갔다 왔니?” 이런 것만 묻고. 아이들은 그때 부모가 무관심했다고 생각하죠. 서현 친구는 많았는데 외로웠어요. 중1 때는 반장이었고, 2~3학년 때 진짜 친구들이랑 잘 놀았거든요. 근데 2~3학년 때 학교가면 놀 친구는 많은데, 학교 가기가 싫었어요. 수업 시간에 앉아있기가 너무 싫었어요. 엄마 공황장애가 같이 왔어요. 서현 그건 계기가 아닌 것 같고, 자해는 우울증 오면서. 기자 공부 말고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의 원인이랄까… 그런 게 있었나요? 엄마 저희 집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았거든요. 근데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더라고요. 상담치료를 하면서 알게 됐어요. 저희 마음대로 아이들을 이끌어가려고 했어요. 아빠가 공부 많이 하라고 아이들을 좀 달달 볶았고, 욱하는 성격도 있었어요. 성격이 강한 큰딸이 아빠한테 대들다가 많이 맞았어요. 서현은 마음이 약하고 착해서 언니가 맞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나봐요. 자기는 맞지도 않았는데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서현이 힘들다고 말을 안 하니까 성‘ 격 좋은 딸, 착한 딸’로만 알고 있었죠. 중1 때 학교 심리검사에서 우울·자살충동이 높게 나왔다고 위센터(교육청 상담센터)에 연결해줬고, 정부에서 4회 상담을 지원해주더라고요. 그 뒤에는 저희가 병원에서 1년 정도 상담치료를 받게 했어요. 처음엔 ‘상담하면 좋아지겠지’하는 마음에 그냥 상담만 보냈어요. 중2 말쯤에 공황장애가 오고 자살충동도 높아져서 입원치료를 권유받았어요. 그때부터 정말 (서현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남편과 함께 방법을 찾아나갔어요. ‘착한 딸’이 곪아가는 걸 몰랐다
자해 청소년의 그림. 경기도 수원 행복한우리동네의원이 본인 동의를 받아 제공.
자해 청소년 도움받을 수 있는 곳
1) 청소년 위기 문자 상담 시스템 ‘다 들어줄 개’
안드로이드 구글 플레이,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다 들어줄 개’ 앱 내려받기
카카오톡 ‘다 들어줄 개’ 플러스 친구 맺고 상담 가능
페이스북 메신저 ‘다 들어줄 개’로 상담 가능
1661-5004 번호로 문자 상담 가능
2) 24시간 전화 상담
자살예방핫라인 1577-0199
청소년 전화 1388
보건복지콜센터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3) 공공 청소년 상담기관: 각 누리집에서 해당 지역 검색
전국 Wee센터 www.wee.go.kr
전국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www.kyci.or.kr
전국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무료 상담 가능)
www.nmhc.or.kr
*성남시 소아청소년정신건강복지센터 (031-751-2445) www.withchild.or.kr
*고양시 소아청소년정신건강복지센터 (031-908-3567~8)
www.goyangwithus.co.kr
4) 의료기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kacap.or.kr에서 해당 지역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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