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2014년 12월10일 서울시청에서 농성하는 모습. 그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면담에 응하라고 요구했다. 박승화 기자
이번엔 다른 결과를 끌어낼 수 있을까.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차별금지법 관련 입장을 살펴보면 여전히 전망이 밝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5년 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가 공약했던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두 후보는 모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회에 의석을 가진 5개 정당의 대선 후보 가운데 차별금지법 제정을 명시적으로 약속한 후보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유일하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2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소속 목사들과 면담 자리에서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차별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으므로, 추가 입법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란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안철수 후보 역시 3월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한국 여성대회에 참석해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사회적으로 여러 의견이 있다.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유보적인 의견을 내놨다. <한겨레21>은 4월12일 각 정당의 대선 후보들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입장을 다시 물었다. 이날은 전국 107개 시민단체가 모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시민연대’가 4월5일 대선 후보에게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정책 질의서를 보내면서 회신 마감 시한으로 정한 날이었다. 심상정 후보와 김선동 민중연합당 후보만 이를 지켰다. 페미니스트라면서… 문재인 후보는 시한을 넘긴 지 이틀 만인 4월13일 <한겨레21>에 보내온 공식 입장에서 “저는 어떠한 혐오나 차별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반대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신분, 학력, 신체조건 등 일체의 차별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법으로 금지한 평등권 침해와 차별 행위가 반드시 근절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 또한 인권에 대한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과 공감대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후보 쪽에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식 입장을 전해오지 않았다. 다만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3월8일의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쪽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선 종교계에서 동성애 문제로 인해 상당 부분 반대하고 있다. 소수자들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법제화하게 되면 오히려 그걸 인정해주는 꼴이 되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반대 입장으로 해석된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쪽은 차별금지법 제정 의견을 묻는 수차례의 전화와 문자 질의에 응하지 않았다. 저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면서 여성 유권자들을 향한 공약을 쏟아내는 후보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에는 사실상 반대 혹은 유보 의견을 밝히는 것을 두고 ‘이중플레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각 후보들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문재인), “나는 모태 페미니스트”(유승민), “30년 맞벌이 부부로 살면서 한 번도 ‘밥 줘’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안철수)고 말한 바 있다. 권박미숙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지금 대선 후보들의 행보는 정치적 철학이나 비전을 보여준다기보다 어떻게 하면 내 표가 덜 떨어질지에 매몰된 단기적이고 이중적 행보로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의 유력 후보가 없어서 정권 교체만이 아닌 어떤 정권 교체여야 하는지를 토론할 수 있는 게 이번 대선이다. 여성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성소수자 문제에 침묵하는 사람이 과연 이번 대선의 후보로 자격이 있나 질문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동희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같은 형용모순”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씨 파면을 결정한 다음날인 3월11일 촛불집회에 참여한 2천여 명의 시민이 집단토론을 통해 완성한 10개 ‘촛불 개혁 과제’ 가운데는 ‘성평등과 사회적 소수자 권리 보장’ 항목이 포함돼 있다. 장병권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대선 후보들 가운데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목사를 만나는 사람은 있어도, 성소수자를 만나는 사람은 없다. 면담 요청서를 3월28일에 보냈는데 면담 의사를 밝힌 것은 심상정 정의당 후보뿐이다”라고 말했다. “표 계산 위해 타협할 사안 아냐”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5·18 유공자가 공무원시험 가산점을 받아서 일반 공시생들이 피해를 본다거나 성소수자들의 에이즈 치료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난다는 등 소수자 혐오 담론은 매우 위험한 수준으로 진화했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의 문제는 정치 지도자가 표 계산을 위해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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