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권센터는 4월13일 군 지휘부가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해 형사처벌했다고 폭로했다. 인권운동단체들은 ‘투옥된 성소수자 군인 석방 및 색출 조사 중단’ 100만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한겨레
제19대 대통령선거의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정권 교체 뒤 우리가 맞이할 사회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성소수자에게도 과연 그럴까. 유력 대선 후보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조차 공약화하지 못하고 유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4월20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인권 8대 의제에 대해 각 후보에게 질의서를 보낸 뒤 받은 답변 내용을 공개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 후보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유일했다. 군형법 제92조 6의 폐지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나머지 후보들은 답변을 보내지 않거나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이유로 명확한 답변을 회피했다. 김희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구체적인 정책 없이 말로만 차별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인권침해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기독교 공공정책 발표회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대선 후보 캠프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했다. 동성애 옹호를 조장하고,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김진표 민주당 의원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모자라 국가인권위원회 위상을 높이는 것조차 반대한다고 했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우리가 이 법을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고 하는 이유는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뿐만 아니라 장애·인종·출신국가·가족상황·병력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고 이런 차별이 발생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정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동성애 옹호로 호도하고 대선 후보들이 장단 맞추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의지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노무현 정부 때 추진된 정책 과제였고, 문재인이 18대 대선 후보로 나설 때 내세웠던 공약이기도 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을 수립할 때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고, 2017년 4월에는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국가별 인권 상황 정기검토(UPR) 의견서에도 이 내용을 포함시켰다. 누구든지 차별받아서는 안 되며, 인간으로서 존엄과 행복을 누릴 기회를 빼앗겨선 안 된다는 인권 대원칙을 지켜내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라 할 때, 이 법을 제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19대 대선 후보들의 태도가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짓밟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린다. 그것은 곧 고통의 시간과 비례한다. 물론 다름을 숨기고 나다움을 포기할 때 시민으로서 주어진 얄팍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수히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알아채지 못하게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성소수자의 삶이다. 나를 사랑할 권리를 지키며 살고 싶다 구속된 육군 대위는 지금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동성과 합의된 성관계가 범죄인 사회에서, 차별을 예방하고 금지할 수 있는 법적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사회적 합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연대를 더 크게 만드는 것이다.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을 그에게 “낙인이란 형벌에 갇히지 않기 바란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한국 사회는 ‘사회적 합의’ ‘시기상조’라는 말 뒤에 숨어 차별금지법 제정을 10년 넘게 미뤄왔다. 대선 후보들에게 간절히 요구한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군형법 제92조 6의 폐지를 약속해달라. 나답게 살 권리, 나를 부정하지 않을 권리, 나를 사랑할 권리를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행복이 특별한 사람들만 누리는 특권은 아니지 않은가. 정민석 인권재단사람·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