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불거진 박근혜 게이트의 초점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 행적에 모아지고 있다. 쏟아지는 의혹과 추측 속에서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는 청와대의 태도는 불신을 자초한다. <한겨레21>은 박근혜 정부 시기 청와대 관계자 7명을 비롯한 다수의 전 정권 청와대 인사들을 상대로 세월호 당일 대통령의 행적을 취재했다. _편집자
그는 왜 7시간의 행적을 숨기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10월25일 청와대에서 ‘연설문 유출’ 의혹에 대국민 사과를 한 뒤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에 비해 11월11일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당일 청와대에서 정상 집무를 봤다. 낮 12시50분께 최원영 당시 고용복지수석이 기초연금법 관계로 박 대통령에게 10분 동안 전화로 보고했다”며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밖에 있지 않았고, 참모진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한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외부에 나가면 다수의 경호 인력이 수행한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고 외출 가능성은 낮게 봤다. 그러나 정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집무실에 있었는지, 사실상 살림집에 해당하는 관저에 있었는지 답하지 않았다. <한겨레21>이 취재한 다수의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관저에 있었다고 말했다. ‘문고리 3인방’ 가운데 핵심인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구속)도 최근 검찰 조사에서 “박 대통령이 관저에 계셨다. 사태가 정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가 나중에 상황이 급변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전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공식 일정이 없으면 대부분 관저에 머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박 대통령은 비상사태가 벌어진 평일 낮 시간에 청와대 본관 2층 집무실이 아닌 사적 공간인 관저에 있었을까. 이날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을 시작으로 15차례나 박 대통령에게 보고가 올라갔다. 그러나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고 있는 바람에 각 보고 내용을 제때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상황의 급박함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인사들은 오전까지 상황이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한다. 전 청와대 관계자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오후 1시30분 전까지는 상황이 급박한 줄 아무도 몰랐다. 대부분 구조됐다는 보도와 보고가 있어 다들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청와대 보고라고 별다른 것이 없다. 언론 보도를 기초로 보고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에 앞서 청와대 보좌진조차 오후 1시30분께까지는 상황의 긴박성과 중대성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뒤 상황이 급변했고, 이후 대통령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준비하느라 시간이 흘렀다. 대통령의 외부 방문에는 경호팀의 사전 답사와 비상시 동선 확보 등을 점검해야 해 기본적으로 1시간 이상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② ‘문고리 권력’이 보고를 머뭇거렸다 그러나 문제는 오후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하고 대규모 사망, 실종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단 한 차례도 지시를 내리거나 긴급회의를 소집하지 않았다. 전 청와대 관계자의 증언으로 보면, 청와대는 오후 들어서도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1시30분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해경 쪽에서 구조자를 중복해 카운터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심상찮다고 판단해 정호성 제1부속실장에게 ‘박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가야 한다’고 연락했다. 그런데 정 부속실장은 ‘갑작스런 외부 방문 일정을 잡는 걸 꺼리는 대통령의 스타일을 알지 않느냐. 대통령의 방문이 외려 구조 작업에 방해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 관계자는 “정 부속실장이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당시 이정현 홍보수석에게 연락했고, 이후 이 수석이 김기춘 비서실장과 연락을 취했다. 그렇게 해서 박 대통령의 오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를 총괄하는 정 전 부속실장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알고 난 다음에도 대통령에게 보고하길 주저했던 셈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그다음 행보 역시 문제다. 세월호 참사의 중대성을 뒤늦게 파악한 청와대는 오후 4시10분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회의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주재했다.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된 이 시각까지도 대통령은 집무실에 복귀하지 않고 대책을 함께 논의할 참모도 없는 관저에 머물러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김 전 비서실장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갈 때 대통령을 수행했고, 청와대에서 그날 뵌 일이 없다”(2014년 7월7일 국회 운영위원회)고 증언한 바 있다. 청와대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핵심 참모인 비서실장과도 제대로 의논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③ 비상 상황인데도 대통령은 반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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