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일
-PTSD가 뭔가요. =살다가 겪게 되는 스트레스 중에서도 인간이 통상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는 스트레스, 즉 재앙적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보이는 반응을 말합니다. 사람을 서로 죽이는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 고문 생존자,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재난 현장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재앙적 스트레스지요. 이런 재앙적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에는 개인적인 차이가 거의 없어요. 남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잘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총에 맞으면 몸이 건강하든 아니든 차이가 없잖아요. 인간이 조절할 수 있는 범위 바깥의 스트레스인 거죠. -이번 세월호 참사는 PTSD에 해당하는 거죠. =그럼요. 전형적인 PTSD죠. 생존자와 유족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파국적이고 재앙적인 상황인 거죠. -이런 재앙적 스트레스가 사람을 어떻게 파괴시키는 건가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갖는 공통적인 핵심 감정은 ‘죄의식’이에요. 내가 무언가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누군가가 죽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희생자의 죽음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거죠.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에서 갑판에 올라가 있다가 생존한 학생이 있어요. 그럼 같은 방에 있던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걔들이랑 같이 나오자고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서 친구들이 죽었다고 믿어요. 또 어떤 아이는 전날 늦게까지 함께 놀았던 친구가 빠져나오지 못한 걸 나랑 놀다가 피곤한 것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3자가 보기엔 비합리적인 생각이지만 재난 현장에서 살아나온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런 식의 죄의식과 책임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유족들도 그래요. 몸살이 있었는데 수학여행을 보내지 말걸, 안산으로 이사만 오지 않았더라면, 그런 식으로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평생 이 생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삶이 일그러집니다. PTSD의 이런 턱없는 죄의식은 실제로 책임이 있어서 죄의식을 갖는 게 아니에요. 현장에 같이 있었다거나 부모·자식, 친한 친구, 교사·학생 사이처럼 희생자와 심리적으로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터무니없는 죄의식의 크기도 함께 커지는 거죠. 시스템이 마비된 사회, 실제 죄를 지어 -물리적 거리와 관계가 없다는 거죠. =네. 책임이 있어서 죄의식을 느끼는 게 아니라 희생자와 심리적으로 유대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만큼의 죄의식을 떠안는 겁니다. -세월호의 무책임한 선장보다 내 죄가 더 크다고 느낄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심리적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렇게 되는 거죠. -어떤 사건에서든 이런 재앙적 스트레스에 노출된 사람들은 예외 없이 죄의식을 갖게 된다고 했는데, 왜 그런가요. =PTSD의 재앙적 레벨의 스트레스라는 것은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그냥 내가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평상시에 100m를 10초에 돌파하는 사람과 20초에 도달하는 사람은 차이가 나지만, 거대한 해일이 밀려올 땐 그 차이가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불가항력적 상황인 거죠. 그런데 사람의 인지구조는 나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면 이 일이 도대체 왜 나한테 일어났는지 이해하고 싶어 해요. 설명하려고 해요. 해일이 덮쳐올 때 내가 조금 더 빨리 뛰었어야 했는데, 이런 식의 비합리적인 해석이라도 하게 되는 거죠. 해일에 책임을 물을 수 없으니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유를 찾아서 설명하게 돼요. 그중 제일 손쉽고 빠르게 보이는 것이 자기거든요. -세월호 침몰 트라우마가 다른 경우와 달리 더 심각하다고 보는 이유는 뭔가요. =첫째는 이번 세월호 참사가 다른 PTSD적 상황과 달리 국소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거죠. 일반적 PTSD는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라든지 재해 현장에 있었던 사람과 유가족 사이에서만 공유하는 국소적인 경험이죠. 그런데 세월호 사건에선 아이들이 수장되는 과정이 느린 화면으로 보듯 전국에 생중계된 거예요. 학살 현장이 실시간 생중계된 것과 다르지 않아요. 아이들이 그렇게 당하는 걸 속수무책 지켜봤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치명적인 균에 의해 피부가 감염됐다가 장기에 퍼져 염증이 생겨도 항생제를 쓰면 치료할 수는 있어요. 국소적이니까요. 그런데 균이 혈관을 타고 핏속으로 들어가면, 그게 패혈증인데요, 대부분 사망해요. 피를 통해서 균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다 뿌려지니까요. 그런데 세월호 재앙은 균이 혈관을 타고 들어간 형국이에요. 우리 사회 전체가 심리적 죽음에 이를 정도로요. -두 번째 요인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사고 수습의 과정과 관련이 있겠군요. 침몰 사고 이후 경악과 분노와 절망과 죄의식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느낌입니다. =네. 맞아요. PTSD가 사람을 붕괴시키는 핵심은 죄의식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고에서는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많았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아서 그 많은 아이들이 죽은 거죠. PTSD를 겪으면 실제적인 책임이 없어도 그 죽음에 대한 죄의식이 집요하게 따라다니는데 세월호 참사에선 PTSD적 죄의식만 있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씻을 수 없는 죄를 졌어요. 생명을 구하는 시스템이 마비된 이 복마전 같은 사회구조에 기여하지 않은 어른은 한 사람도 없잖아요.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거의 사이코패스적 무감각일 거예요. 혼자 죄의식을 안 느끼는 듯한 대통령 -지켜보는 사람조차 마음이 복잡하고 안정이 안 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거로군요. =하나의 상황에서 사람은 여러 가지 욕구를 가집니다. 그중 하나의 욕구가 해소되면 그다음 욕구의 충족 과정으로 넘어가죠. 충족된 욕구는 더 이상 욕구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는 우리 모두가 가진 욕구들이 충족된 게 하나도 없어요. 이래선 심리적으로 다음 단계로 진도를 나갈 수 없어요. 분노만 해도 그래요. 책임 있는 사람이 ‘진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누군가 맞아죽을 각오를 하더라도 분노를 흡수해줘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상황도 사람들의 감정도 한 발짝도 진도를 나갈 수 없어요. -대한민국호의 선장을 자처하는 대통령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겠어요. =핵심적이고 결정적이죠. 이 재앙을 최소한이나마 수습할 수 있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 사람은 대통령입니다. 먼저 사과를 하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금부터 대통령이 나선다 해도 재앙의 극단성으로 봐서는 최소한의 수습일 뿐입니다. 그마저도 안 한다면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어요. 실질적인 관계가 없으면서도 거의 모든 국민이 죄의식, 미안함을 느끼는 건 사고를 당한 부모에 대한 심리적 동질감, 연대감 때문이에요. 그런데 대통령 혼자 죄의식을 안 느끼는 것처럼 보여요. 누군가에게 화내고 혼내고 있잖아요. 지금의 고통과 연결된 정서적 끈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나라 사람 같아요. 대통령이 나서서 이런 끔찍하고 무기력한 마음들을 흡수해주지 않으면 칼에 찔리는 것 같은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겁니다. 그러면 우린 끝내 가라앉을 수밖에 없어요. -누군가 그랬더군요. 배를 침몰시킨 건 선장이지만 ‘참사’는 정부가 만들었다고요. =네. 세월호 참사는 사망자 수가 많아서만 참사가 아닙니다. 선장이 큰 죄를 졌지만 그건 어찌 보면 한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어도 한 사람 때문에 그랬다면 그건 국소적인 문제예요. 그렇지만 당연히 우리를 지켜줄 거라 생각했던 국가가 이런 무능, 무책임, 사악함마저 느끼게 하면 집단우울증이 생길 수밖에요. PTSD에는 1차, 2차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배가 침몰된 게 1차 트라우마라면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은 2차 트라우마예요. 그런데 PTSD에서 결정적으로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2차 트라우마입니다. 정신의학의 정설이에요. 이번에 우리는 정부의 반응을 보면서 돌이킬 수 없는 2차 트라우마를 받았습니다. 국소적 염증이 아니라 패혈증에 빠진 겁니다. 단언컨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겁니다. 사회의 전 영역에서요. 최소한 10년은 지속적으로 매달려야 -PTSD는 치료가 되나요. =죽을힘을 다해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습니다. 유족이나 생존자들은 지금도 위험하지만 몇 년 지난 뒤에도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다양한 형태로 개인과 가족이 해체될 수도 있고요. 끈질기게 지켜보고 치료해야 합니다.
정혜신 박사는 “세월호 재앙은 균이 혈관을 타고 들어간 형국이에요. 우리 사회 전체가 심리적 죽음에 이를 정도로요”라고 트라우마의 심각성을 말했다. 지난 4월22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김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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