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지 않아도 괜찮은 ‘무한’제956호살아 있는 것, 입을 가진 것을 키우는 일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그래도 무언가를 키우는 일이 안겨주는 평범한 위로를 완벽하게 포기할 수 없을 때, 작은 화분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죽은 식물을 화분에서 뽑아내고 새로운 식물을 옮겨 심는 일이 반복될 때마다, 생명의 사소함과 죽음의 평범성에...
꿈으로 오는 가정법의 시간제954호봄의 시제는 가정법이다. 봄은 언제나 ‘봄이 오면’이라는 시간대로부터 다가온다. 미래에 대한 가정과 기대 속에서 봄은 만질 수 없는 꿈처럼 오는 것이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김동환)와 같은 옛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윤동주)과 같은 익숙한 청춘의 시를 떠올리게 될 때도,...
‘당신’이라는 상실을 기다리다제952호옛날 영화를 다시 보면 전혀 다른 영화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를 다시 보았을 때, 14년 전의 ‘명보극장’을 자세히 기억해내지 못했다. 극장은 사라졌고, 그 시절의 불투명한 감각은 제멋대로 떠올랐다 무력하게 사라졌다. 소년이 서 있던 도서관 창문에는 하얀 커튼이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