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거리 곳곳에 설치된 CCTV. 연합뉴스
조이트로프 영화처럼 하지만 그뿐. 경찰은 찾아낸 ‘월리’의 정체가 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어떤 사람의 얼굴로 그가 누군지를 밝혀주는 안면인식기술은 이 글을 쓰는 2019년 현재에도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다. 경찰이 택한 방법은 또 한 번의 ‘월리를 찾아라’였다. 경찰은 120개 CCTV를 다시 돌려 본 끝에 ‘월리’가 근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사용하는 장면을 포착했고, ATM 사용 내역을 다시 샅샅이 뒤진 끝에 범인을 찾아냈다. 사건 발생에서 6개월여가 지난 뒤였다. 이 사건이 2010년 이전에 발생했다면 사건 현장과 피해자 주변에서 단서를 찾지 못한 그 지점에서 수사가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 강서구는 2010년부터 방범용 CCTV 구축 사업을 시작했고, 경찰은 사건 인근에 설치된 CCTV 전부를 뒤진 끝에 범인을 잡아낼 수 있었다. 2019년 현재 시점에 다른 강력범죄 수사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새는 관공서가 설치한 방범용 CCTV뿐만 아니라 개인이 설치한 CCTV, 차 안에 있는 블랙박스, 심지어 사건 현장 인근을 돌아다니는 노선버스 실내에 설치된 CCTV까지 활용해 범인을 잡아낸다. 내가 변호를 맡았던 한 편의점 강도 사건에서 경찰은 범인이 도망가는 경로에 있는 CCTV, 블랙박스를 모두 확보해 화면 속 범인의 사진을 이어붙이다시피 했다. 흡사 조이트로프 영화가 발명되기 이전에 사용된, 착시 원리를 활용한 많은 애니메이션 장난감 같았다. 책에 그림 여러 장을 그리고 책장을 빨리 넘기면 그림이 움직이는 듯한 모습인데, 이 장치는 이러한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강력사건이 벌어질 때면 새로운 과학수사 기법이 범인 검거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는 뉴스가 종종 나온다. 하지만 이들 과학수사 기법이 얼마나 범인 검거에 도움이 되는지는 늘 회의적이다. 요새 각광받는 프로파일링만 해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검거 전에 했던 범인 예측과 실제 검거된 범인이 얼마나 들어맞았는지를 분석해봤는데 그 결과는 자못 실망스러웠다(언젠가 이 지면을 빌려 분석 결과를 소개하고, 프로파일링에 대해 본격적으로 비판해볼 계획이다). 전국 곳곳에 카메라가 가득 찬 지금, 오직 범인 검거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CCTV만큼 큰 역할을 한 과학수사 기법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일선 경찰의 열정과 수고는 시대가 바뀐 지금에도 범죄 억제에 가장 중요한 일등 공신이다. CCTV만큼 훌륭한 과학수사 기법은 없다 누군가 내게 가장 재미있게 본 법정물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라 답할 것이다. 영화 내내 법정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이 영화를 최고의 법정물로 꼽는 이유는, 형사 절차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편향과 논쟁을 두루 녹여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수사는 발로 뛰는 것이라는 시골 형사(송강호)와 과학적인 수사를 통해 범인을 찾아야 한다는 서울 형사(김상경)가 논쟁을 벌이는데, 영화를 볼 때는 웃고 넘겼던 시골 형사의 대사가 시간이 지날수록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미국엔 말이야 에프비아이(FBI·연방수사국)라고 있어, FBI. 그 새끼들 수사하는 거 보면 어떻게 하는지 알어? 대가리를 존나게 굴려. 왜 그런 줄 알어? 씨발 땅덩어리가 어마어마하거든…. 근데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말이야, 이 두 발로 몇 발짝 뛰다보면 다 밟혀. 다 밟히게 돼 있다고.” 신민영 법무법인 예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