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 사료를 소에게 먹이는 축산농가. 정작 소들의 등급은 3등급이다.
소고기는 도축을 금지했던 조선 시대에도 사람들이 몰래 먹었을 정도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먹거리다. 여러 고서엔 이야깃거리도 넘친다. 조선 시대 실학자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소고기 예찬론을 펼쳤다. <중종실록>에는 손님 접대로 소를 잡는 평안도 사람들의 얘기가 나온다. 음식 문화평론가 윤덕노씨는 평안도에 어복장국 등 소고기 음식이 발달한 이유를 이런 역사에서 찾는다. 지엄한 국법도 강렬한 식욕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고려 시대 이규보는 육식주의자의 비애를 담은 ‘소고기를 끊다ʼ란 시도 지었다. 현대에도 소고기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소고기 중에서도 마블링이 촘촘하게 박힌 최고급 한우는 특별한 날에만 먹는 귀한 먹거리다. 지난주 끝난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 잘 그려져 있다. 출판사가 배경인 드라마.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리자 사장은 “전 직원 회식하자”고 하는데, 직원들이 부르짖은 회식 메뉴는 소고기다. 살면서 겪는 벅찬 기쁨 대부분이 소고기 몇 점으로 귀결된다. 그러면 마블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그리고 마블링 때문에 돈을 버는 이는 누구일까? 소는 번식기, 육성기, 비육 전기, 비육 중기, 비육 후기를 거치면서 성장한다. 본래 풀을 뜯어 먹던 우리 소는 1993년 ‘소고기 등급제’가 도입되면서 옥수수 등 곡물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다. 소고기 등급제란 도축한 소의 마블링, 육색, 조직감, 성숙도 등을 기준에 따라 판정해 등급을 매기는 제도다. 소고기 등급제가 있는 나라는 미국, 일본, 한국뿐이다. 소는 옥수수 사료가 대량으로 밥상에 나오면 제 죽음을 알아챈다. 도축 직전에 소가 가장 많이 먹는 사료는 옥수수 등 곡물이다. 마블링을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사료협회 홍성수 기획조사부장은 “사료용 옥수수는 국내에서 전혀 생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로 미국 등에서 수입한다. 미국 곡물엔 유전자변형생물’(GMO·지엠오) 논란이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료용 옥수수 재배를 국내에서 시도한 농가도 있었다. 하지만 채산성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 도저히 수입 사료와 가격경쟁이 안 되는 것이다. 결국 축산 농가는 마블링이 풍부한 소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미국산 옥수수 등 곡물 사료를 많이, 더 많이 먹일 수밖에 없다. 미국 옥수수 사룟값이 춤을 추면 축산 농가의 시름은 깊어진다. 올라가는 사룟값은 바로 소고기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2018년 미국 사료용 옥수수 수입량은 2015년에 견줘 대략 2배 늘었다. 우리 축산 농가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자는 미국 곡물 사료 업체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년 전이다. 볏짚, 청치(푸른빛이 나는 쌀알), 쌀겨, 과일 껍질 등을 2시간 이상 찌고 미생물을 넣어 발효까지 한 사료를 쓰는 축산 농가에 간 적이 있다. 태평스럽게 물소리, 새소리, 클래식 음악 등을 들으며 건강하게 자란 그 농장 소들의 등급은 3등급이었다. 유기 축산에 매달렸던 농장주가 “마블링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건강한 먹거리에 눈을 뜬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 그 농장의 3등급 소는 한살림 등을 통해 유통한다. 사육 공간, 도축 방식 따지는 등급제 필요 올해 12월이면 개편한 소고기 등급제가 시행된다. 예전보다는 마블링의 권력이 약해졌지만 사라진 건 아니다. 마블링 정도를 판정 기준에서 빼면 안 되는 걸까? 마블링이 거의 없는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는 미식가들이 손에 꼽는 음식이다. 사육 공간, 도축 방식 등 축산 환경까지 따져야 하지 않을까? 등급제가 필요하긴 한 건가? 누구를 위한 등급제일까?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ESC 팀장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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