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치유된 계기는 우선 타인의 환대다. ‘나’는 뿔테 여인의 사랑과 돌봄으로 상처를 치유할 힘을 얻었다. 상처 입어 쓰러진 이에게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타인의 환대와 사랑이라는 사실은 고전적 해법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요인은 그녀가 먼저 뿔테 여인에게 사랑을 베풀었다는 사실이다. 그 여인은 K네 집의 예전 안주인으로서 이미 죽은 사람, 즉 귀신이었다. 여인이 살아 있을 때 화분과 마당을 정성껏 돌보았으나, 사후 남편은 화분을 모조리 부수고 마당을 방치한 채 멀리 이사 갔다. ‘내’가 마당과 화분을 진심 어린 사랑으로 보살폈으니, 그에 대한 답례로 뿔테 여인이 ‘내’게 환대를 베풀었을 것이다. 각박한 교환의 법칙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여러 번 생명을 환대했다. 오빠를 잃은 어머니가 “이제 누구와 얘길 한다냐”며 울자 ‘나’는 “나…와… 얘기해요”라고 더듬거리면서 어머니를 달랬다. “해저물녘이고 신새벽이고 아무 때나” 걸려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면서 어머니를 위로했다. 말을 더듬는 처지에서 쉽지 않은 사랑이었다. 우주 전체를 돌고 돌아서 돌아오네 ‘나’는 생존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타인을, 생명을 환대하며 기꺼이 보살폈다. 타인에 대한 환대는 타인의 환대를 불러온다. 앞의 타인과 뒤의 타인은 다를 수 있다. 사랑을 준 사람은 그것을 받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엉뚱한 다른 곳에서 보답받기도 한다. 옆의 생명에게 보냈던 따뜻한 눈길에 대한 보상을 알래스카에서 받을 수 있다. 사랑은 돌고 돈다. 너와 나 사이에서가 아니라 우주 전체에서. 인과응보를 따지지 않더라도 베푸는 행위 자체가 힘을 준다. ‘나’는 꽃들에게 물을 주며 “야릇한 존재감”을 느낀다. 생명을 돌보고 사랑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한 것이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생명을 환대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치 있다는 느낌을 얻는다. 타인의 존엄을 보살피면서 자신의 존엄을 확인한다. 베풂에는 이기적 효용이 있다. 윤은 타인의 안부를 묻고, 끝없이 고민을 상담해주며, 그를 위로하면서 힘을 얻었다.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사랑받는 느낌을 선물받았다. 갓난아이를 돌보는 어미가 무력한 아이에게서 힘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베푸는 이는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자긍심을 얻는다. 자긍심 혹은 자존감은 가장 처참한 상처까지 치유할 수 있는 기적 같은 힘을 준다. ‘내’가 뿔테 여인에게 말문을 트고 나서 처음으로 한 이야기는 어머니의 사연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외삼촌은 어머니와 점심을 먹으며 옛날얘기를 주고받았다. 이 시간은 어머니에게 봄날의 빛처럼 소중했다. 그러던 외삼촌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말동무 외삼촌을 잃은 어머니와 가장 믿었던 창을 잃은 ‘나’는 유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어머니의 상실 이야기는 ‘내’ 치유를 돕는다. 세상과 연결된 최소한의 고리마저 잃어서 철저히 외로운 사람이 자기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누군가도 유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나’는 ‘고통의 연대감’을 느꼈을 것이다. 저만 고통스럽다고 여기면 두 배로 괴롭다. 자기처럼 아픈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을 알면 적어도 처절한 고립감에서는 벗어난다. 상처에는 창조적 힘이 있다. 상처받은 사람은 고통의 연대감을 통해 타인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더 적극적인 치유자로 다시 태어난다. 상처를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치유할 수 있는 법이다. 소설의 치유자 뿔테 여인은 죽음으로써 남편과 이별했고 자신과 남편의 상처를 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과 온 우주에게 버림받은 듯한 괴로움을 안다. 하여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을 치유할 수 있었다. 스스로 치유하려는 의지 뿔테 여인은 귀신이 아니라 ‘내’가 불러낸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환상을 불러온 것은 스스로 치유하려는 ‘내’ 의지다. 생명을 환대해 힘을 얻고 환대를 구하려는 의지다. 스스로 치유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실바람 같은 사랑도 태풍처럼 힘을 발휘하지만, 의지 없는 이에게는 태산 같은 사랑도 먼지에 불과하다. 의지 있는 사람은 한 줄의 속담에서도 자신을 치유할 금과옥조를 발견하지만, 의지 없는 이는 수천 권의 경전에서도 공염불만을 본다. *연재를 마치며 험난했던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이만큼이라도 치유하고 성장하기까지, 9할의 힘을 소설에서 얻었습니다. 이 소중한 선물을 가장 힘겨운 시기를 건너는 청(소)년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마음 중에서도 깊이깊이 숨겨진 마음을 만지면서 그 모양새를 알기 바랐습니다. 달콤하고 피상적인 위로가 아니라 인문학적 통찰을 곁들인 근본적인 치유책이길 소망했습니다만, 천변만화하는 청(소)년의 마음을 더 생생하게 그려내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부족한 필자에게 응원을 보내주신 독자들과 더없이 훌륭한 지면을 내주신 <한겨레21>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나누었던 호의와 환대가 돌고 돌아 어디선가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회자정리거자필반(會者定離去者必返)이라, 더욱 깊어진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박수현 문학평론가·공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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