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세상엔 ‘정상적인 것’이 드물다 필립의 이야기는 서머싯 몸의 삶과 겹친다. 몸은 10살에 부모를 잃었다.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몸이 필립으로 자기 삶을 복기하며 하고 싶었던 말을 ‘페르시아 양탄자’에 담았다. 시집 하나 제대로 낸 적 없는 술고래 시인이 필립에게 준 선물이다. 화가가 되려다 포기하고, 의대에 진학했다. 빈털터리가 되고, 노숙을 전전하며 자살을 고민하고, 사랑이라 믿었던 자기 마음이 순식간에 차가워지는 걸 목도한 뒤에야 필립은 여러 겹 실을 이어 무늬를 이룬 양탄자를 다시 본다. “자기 존재의 무의미함이 오히려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고통도 문제가 아니듯 행복도 문제가 아니었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무슨 일이든 이제는 삶의 무늬를 더 정교화하는 데 보탬이 되는 동기가 될 뿐이다. 종말이 다가오면 그는 무늬의 완성을 기뻐할 것이다…. 그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오히려 드문 일임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이 몸에든 마음에든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다. 이 순간 필립은 이 모든 사람에게 성자와 같은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필립은 그리피스의 배신을, 그에게 고통을 가져다준 밀드레드를 모두 용서할 수 있었다. 그네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화상 경험자 7명은 모두 그렇게 말한다. 정인숙씨는 사고 이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때부터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른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할까. 다치기 전에는 나 살기 바빴으니까 남을 돌아볼 줄 몰랐거든요. ‘힘들겠다, 안됐구나’ 이 정도였지 어떤 게 불편할지, 얼마나 힘들지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전기 외선 작업을 하다 한쪽 팔을 잃은 송영훈씨는 자기 고통에 공감해줄 사람을 찾아 한밤에 병원을 헤맸다. 지금 그는 화상환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멘토다. 하청 노동자 정범식씨가 해저터널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회사는 산업재해를 숨기려 구급차도 부르지 않았다. 몸은 화상으로 마음은 소송으로 만신창이가 됐던 그가 이제 말한다. “저한테 행복은 뭐냐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제 정신세계가 지금보다 더 성숙해지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바라보는 가정도, 세상도 더 아름다워질 거 아녜요. 지금 이렇게 말하면서도 울컥해요.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고마운 게 많거든요. 내가 뭐 잘한 것도 없는데 말이에요. 세상에 불만도 많았지만 고마운 것도 많아요.” 아무것도 아닌 자기를 받아들이길 “내 아픔이 나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대로 끌려가지 않고 내 마음을 살찌우는 계기를 꼭 찾으셔야 해요.”(정범식씨) <나는 자연인이다>(MBN)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말벌 아저씨’ 허명구씨가 나온 적 있다. 산속에서 홀로 벌을 치며 농사짓는다. 방문한 연예인 윤택이 말려놓은 고추를 보며 “이거 다 농사지으신…” 하는 사이에 후다닥, 윤택에게 등목을 해주다가 후다닥, 깨를 털다 후다닥, 허명구씨는 일벌을 구하러 달려간다. 파리채를 들고 말벌을 몰아낸다. 화상 경험자 7명은 어떻게 고통을 통과하며 연민과 공감, 연대로 나아가나.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자기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모든 경험을 환영하며 양탄자를 완성해가나. “천국은 마음이 가난한 자의 것”이란 말은 진짜인가보다. 고통을 마주 볼 자신이 없는 나는 실패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일단은, 절망의 감정이 몰아닥칠 때마다, 말벌을 쫓아내듯, 후다닥. <끝> *이제까지 ‘김소민의 아무거나’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새로운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김소민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