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방탄이 그 질문의 탐색 과정을 노래로만 들려줬다면 내가 방탄교 집사가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방탄 동영상을 보며 나도 모르게 실실 웃게 되는 까닭은 이들이 스스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기로, 함께, 성장하는 그런 꿈같은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걸 말이다. 판이하게 다른 7명은 대체 불가능하고 그 안엔 순위가 없다. 팬들이 브이로그(자신의 일상을 찍은 동영상 콘텐츠) 등에 나온 멤버들 간 ‘케미’를 따로 편집해 퍼나르며 확인하는 건 ‘병맛’ 개그로 웃고 떠드는 사이 멤버들끼리 주고받는 정과 신뢰다. “웃기는 조합이죠. 완벽한 사람이 없고 다들 약점이 있어요. 오히려 저희한텐 그게 득이었던 거 같아요. 원톱이 없었다는 거, 싸우면서 대화해서 풀고 이런 것들이 잘 이뤄졌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던 거 같아요.”(RM) 그가 기억하는 동갑내기 제이홉의 첫 모습은 웅크린 회색 패딩 등짝이다. 이 회색 패딩이 일어나 춤을 췄을 때 RM은 “반했다”고 했다. 광주에서 춤꾼으로 날렸던 제이홉은 처음에 랩 하는 사람들 속에서 이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제이홉 곁에는 언더그라운드 래퍼로 실력을 닦아온 RM과 슈가가 있었다. 방탄의 ‘못 말리는 희망’ 아이콘이 된 제이홉은 데뷔 5년 만인 지난해 자기가 쓴 랩을 모아 《홉월드》 믹스테이프를 냈다. 이 동갑내기 사이엔 존중이 있다. 15살에 팀에 합류해 사춘기를 학교가 아니라 연습실에 보낸 ‘황금막내’ 전정국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팬들은 봤다.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아무것도 없던 열다섯의 나. 세상은 참 컸어. 너무 작은 나…. 형들이 있어. 감정이 생겼어. 나 내가 됐어. 형이 아프면 내가 아픈 것보다 아파.”(<비긴>) 방탄 7명의 작은 세상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보여준, 지하와 지상이 갈린 현실 세계와 반대 지점에 서 있다. “믿는 게 아냐 버텨보는 거야. …저기 저 꽃잎들처럼 날갤 단 것처럼은 안 돼. 그래도 손 뻗고 싶어.”(<어웨이크>) 차라리 남을 믿지, ‘꼬라지’ 뻔히 안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믿는 건 불안한 일이다. 그 믿음이 거저 생기지 않는다. 잘생겨서 캐스팅된 맏형 진은 “제이홉처럼 춤춘다 생각했는데 모니터링해보면 진이 추고 있었다”면서 결국 악명 높은 방탄 안무를 소화했다. 지민은 목소리가 갈라진 날엔 무대에서 내려와 운다. “세상은 절망의 또 다른 이름”이고 “나의 모든 기쁨이자 시름”(<리플렉션>)이니까. 이 청년들의 불안은 오로지 그들 몫이었다. 13살 때부터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은 슈가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교통사고가 나 어깨를 다쳤다. “포기하고 싶은 적이 있죠.” 제이홉의 꿈을 지원하려 어머니는 타지로 일을 나갔다.(<마마>) 데뷔한 뒤엔 “아이돌이면 힙합 포기한 거 아닌가? 방탄 가사가 랩이냐?” 따위 조롱을 들었다. ‘흙수저’ 청년들은 서로 희망이 되어 “나는 항상 나였기에 손가락질해.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네”(<아이돌>)라며 ‘얼쑤’ 추임새를 넣는 어른으로 자랐다. 동화 같은 이야기다. ‘판타지’에 마음과 돈을 털린다고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동화가 지금 여기에서도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 또는 환상마저 없다면, 나는 계급이 냄새로도 구별되는 ‘기생충’의 세상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나인 게 싫은 날, 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 문을 하나 만들자 너의 맘속에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곳이 기다릴 거야.”(<매직샵>) 한 ‘아미’(방탄소년단 팬)는 이 노래 동영상에 이런 댓글을 영어로 달았다. “나를 믿을 수 없었어. 어느 날 기차를 탔는데 뛰어내리고 싶었어. 이 노래가 나를 구했어.” 이 댓글에 3만여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별처럼 다 우린 빛나 자기를 사랑하라는 주문이 진부한가? 모멸 속에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두렵더라도 타인의 기준을 따르지 않겠다는 선언엔 전복의 기운이 배어 있다. 김금희 작가가 쓴 소설 <경애의 마음>에서 미싱 회사에 다니는 경애는 베트남 지사의 비리를 고발했다가 되레 좌천된다. “경애는 다시는 자신을 방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에는 고통 속에 떠내려가도록 놓아두지 않겠다.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것들을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경애는 회사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인다. 다들 제 할 일 바빠 보인다. 그래도 경애가 화장실에 갈 때 팻말을 맡아주는 커피숍 주인이 있고, 퇴근길에 차로 태워다주는 동료가 있다. “사람들의 불빛들. 모두 소중한 하나. 어두운 밤 외로워 마. 별처럼 다 우린 빛나. 사라지지 마 큰 존재니까.”(<소우주>) 김소민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