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 작가는 <월간 정여울>을 통해 독자와 아날로그적 소통을 하고 싶단다. 정여울 제공
단행본을 만들다보면 주제에 맞는 내용만 넣는다. 분량이 넘치거나 튀는 내용은 뺀다. 그게 아쉬웠다. 난 통일성 없이, 잡스럽고 삐져나오는 여집합 같은 부분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나를 표현하기에는 단행본이라는 분야가 제한적이라고 느꼈다. 이명박·박근혜 두 정부 시절에는 정치적 검열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썼다는 이유만으로 잘리기도 했다. 나 자신의 검열도 있었다. 20대엔 내 상처를 표현하는 글을 제대로 못 썼다. 그런 글을 쓰는 게 부끄럽고 ‘혹시 이런 거 쓰면 차별받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땐 두려움이 많았다. 40대 들어선 뒤에는 ‘겁을 내면 나만 손해 보는구나. 좀더 용기 있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면의 검열을 깨뜨리는 게 외부 검열을 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 결국 내면의 검열에서 해방돼야만 글쓰기의 자유를 쟁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월간 정여울>에서는 문체나 내용의 제한 없이 자유롭게 쓸 계획이다. 타인의 삶에 안테나를 ‘월간’이라는 기간으로 책을 낸다는 점이 특이하다. 잡지를 만드는 게 꿈이다. 그 정도로 잡지를 좋아한다. 문학 자체가 잡스러운 것인데 문학을 뛰어넘는 비문학적인 잡스러움을 예전 잡지에서 많이 얻었다. 난 <말> <길> <리뷰> 등 종이 잡지를 즐겨 읽은 세대다. 돌이켜보니 종이 잡지를 열심히 읽은 그 무렵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많았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에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타인에 대한 관음적 호기심이 아니라 타인에게 진정한 공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살다보면 내 일인분의 삶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걸 벗어나, 나 아닌 다른 이들의 삶에 안테나를 열어두는 잡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종이 잡지를 향한 노스탤지어’를 실현하고 싶었다. <월간 정여울> 들어가는 말에 “지극히 예스러운 잡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아날로그적 소통을 꿈꾼다”고 적었다. 난 트위터도 없고 페이스북도 폐쇄했다. SNS를 안 한다. 글 쓰는 시간이 부족한데 그것까지 하면 정신없을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따뜻하게 아날로그적으로 독자와 소통하고 싶었다. 그게 바로 <월간 정여울>이다. 책 뒤에 독자의 의견을 받을 수 있는 엽서를 넣었다. 2월호부터는 별책 부록 형태의 사진엽서를 넣을 예정이다. 쿠바, 아르헨티나 등 내가 여행한 곳의 사진과 여행에 대한 단상을 쓴 엽서다. 독자가 그 엽서를 보고 다른 사람의 앨범을 보는 것처럼 느꼈으면 좋겠다. 그걸 보고 주변 사람들과 편하게 수다 떨어도 좋겠다. 그런 아날로그적 소통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월간 정여울> 1월호의 제목은 ‘똑똑’이다. 2월호는 ‘콜록콜록’, 3월호는 ‘까르륵까르륵’ 등 의성어와 의태어로 제목을 달았다. 내 글에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다. 난 의성어가 들어간 글은 음악 같아서 좋고, 의태어가 있는 글은 그림처럼 느껴져 좋다. 내 글에 들어간 의성어와 의태어를 살려 <월간 정여울>의 부제를 그렇게 지었다. ‘심리치유 에세이’라고 이를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똑똑, 콜록콜록 등 그 단어의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글이라면 다 넣을 수 있다. 그러니 좀더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고 나의 잡스러움을 마음껏 실험할 수 있다. 단행본 작업할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1월호 때 PDF(전자문서 파일)까지 만들었다가 80% 이상 새로 작업했다. 기존에 썼던 원고를 많이 빼고 최근에 쓴 원고를 넣었다. 단행본 작업에선 2∼3년 전에 썼던 글이 들어간다. 글 모이는 시간, 편집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러다보면 2∼3년 뒤에 책이 나온다. 월간으로 작업하면 내가 며칠 전에 쓴 글을 넣을 수 있다. 지금 하는 고민을 블로그나 SNS가 아니라 종이에 담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월간 정여울>에는 최대한 가장 싱그러운 글을 많이 넣고 싶다. ‘나’를 써야 생기는 교감 지난해 5월부터 <한겨레21>에 ‘마흔에 관하여’를 연재하고 있다. 그 연재에 마흔을 사는 이들이 공감하는 글이 많다. 다른 사람들이 나랑 비슷하다고 할 때 신기하다.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이런 느낌이 들었던 책이 2013년에 펴낸 에세이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다. 나를 평론가에서 작가로 만든 책이다. 그때에는 그 책을 안 쓰려고 도망다녔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게 힘들어서였다. 그걸 하고 나니 문턱을 넘는 기분이었다. 나에 대한 글을 쓰는 게 재미있는 일임을 느꼈다. 나에 대해 써야 독자가 진정으로 교감해준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동안 <그림자 여행>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 감성적이고 따뜻한 에세이를 써왔다. 앞으로 어떤 에세이를 쓰고 싶은가. ‘에세이는 누구나 쓸 수 있어’라는 글이 많다. 하지만 내 마음에 드는, 나와 교감할 수 있는 글은 찾긴 힘들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교집합을 발견하고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에세이를 쓰고 싶다. 그러려면 계속 내 마음의 안테나와 주파수를 더 멀리, 더 넓게 펼쳐야 한다. 내가 더 커지고 깊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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