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들 수연은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어머니에게 빌붙어 살던 비겁하고 비굴한 빈대.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체조선수이자 막내아들인 수연의 평은 달랐다. 동네에서 평판 좋고 착한데다 전반적으로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사람. 심지어 그에겐 아버지가 둘인데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더 좋다고까지 했다. “슬퍼도 울지 말고 웃겨도 웃지 말자.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러려니 하다가 가도록 하자.”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다짐했다. 그들의 말에 어떤 동조도 반박도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 아버지와는 아주 다른 아버지였다. 내가 아버지로부터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나를 종종 팼다. 김대중보다 김영삼이 잘생겼다고 해서 맞았고, 양말을 세탁기 안에 넣으라고 했다가 맞았다. 10살도 안 된 어린 자식을 하잘것없는 이유로 팼다. 우리 가족을 다 팼다. 왜 아버지는 우리 가족만 팼을까. 왜 아버지는 혼자가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을 찾지 않았을까. 내심 아버지가 처음 결혼한 사람이 우리 엄마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안도했는데. 다른 자식들 앞에서 그게 유일한 우월감이었는데. 대화가 길어질수록 자명한 사실은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가장 먼저 잊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일 때, 가장 최악이었다. 일관되게 나쁜 아버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버지가 입원했다는 요양원까지 가서 나는 끝끝내 아버지를 만나지 않고 돌아왔다. 나와 언니는 아버지와 혈연관계에서 파생되는 모든 권리를 포기했다. 아마 권리보단 의무가 뒤따르는 관계였을 텐데,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이 자매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는 삶을 포기했다. 나는 당신을 책으로 위로할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있던 한때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나쁜 아버지를 기다리던 한때부터 아버지가 없다 여기며 사는 지금까지, 피할 수 없던 불우와 태연함을 가장한 분노는 그대로다. 아버지 역시 아직 살아 있다. 없는 채로, 아버지는 여전히 살아 있다. 소설 속 나는 술을 잘 마시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런 내게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이래 봬도 내가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고.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대견하게 여겼던 적이 나라고 없었을까. 하지만 종종 내가 그 사람으로부터 가장 먼저 잊힌 사람이라는 걸 알아챘을 때, 또는 내가 남들보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 같을 때, 그저 보통의 존재를 바라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당신을 책으로 위로할 것이다. 책은 모든 사람의 삶을 장려한다. 당신을 당신 자신에게 잘 보이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주란 작가는 책의 말미에 이런 말을 썼다. 네가 좀더 오래 살았으면 해. 나는 그 말이야말로 모든 책이 전하는 진심이라 믿는다. 황현진 소설가 *‘황현진의 사람을 읽다’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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