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과 김훈 그리고 단무지 먹고 트림
청춘의 허기 달래준 신촌 라면집 ‘훼드라’
등록 : 2018-04-09 17:45 수정 : 2018-04-11 11:56
“‘라면’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밥맛이 없을 때, 또는 지난밤에 지나치게 술을 마셔 속이 쓰릴 때, 또는 입이 심심할 때, 나는 라면을 끓여 먹는다. 파를 조금 썰어 넣고, 때로는 달걀을 깨 넣거나 하여 먹는다.”
전집 <우리 시대의 문학/두꺼운 삶과 얇은 삶>(문학과지성사 펴냄)에 실린 글 ‘라면 문화 생각’에서 문학평론가 고 김현 선생은 라면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단출한 문장에 담아 표현했다. 평론을 읽을 만한 독립적인 콘텐츠로 만든 최초의 스타일리스트치고는 문장이 검박했다. 이 글을 읽었을 때, 라면이 먹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라면이 먹고 싶은 이유의 보편성 때문이었을까. 밋밋한 문장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김현만큼이나 소설가 김훈도 어지간히 라면을 먹었다. 제목부터 라면 애호가를 표방하는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문학동네 펴냄)에서 김훈은 라면의 식감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추운 거리에서 혼자 점심을 먹게 될 때는 아무래도 김밥보다는 라면을 선택하게 된다. 짙은 김 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 콱 쏘는 조미료의 기운이 목구멍을 따라가며 전율을 일으키고, 추위에 꼬인 창자가 녹는다.” 여기저기의 조각글을 묶어 2015년 펴낸 이 책에서 그는 라면을 먹을 때, 라면처럼 ‘세상은 부박(浮薄)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고 썼다. 부박함이고 뭐고 어제 먹은 술이 아직 안 깬 나는 그저 마른침을 삼킬 뿐이다.
지금이야 정크푸드 취급을 받지만 1960년대만 하더라도 라면은 고급 음식 대접을 받았다. 작가 이문열은 자신의 소설 <변경>에서 60년대 초 라면 맛에 경의를 표한 바 있다. “노랗고 자잘한 기름기로 덮인 국물에 곱슬곱슬한 면발이 담겨 있었는데, 그 가운데 깨어넣은 생계란이 또 예사 아닌 영양과 품위를 보증하였다. (…) 철은 갑작스레 살아나는 식욕으로, 그러나 아주 공손하게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의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난 음식을 먹고 있는 듯했다.”(<변경> 7권, 문학과지성사 펴냄) 남의 입에 들어가는 귀한 라면 한 젓가락보다 내 입에 들어가는 흔한 라면 한입이 더 존귀하고 지엄한 것을 모르지 않는 난, 컵라면이라도 사서 먹어야겠다고 마음먹을 따름이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왜 평소 하던 대로 음주추태 이야기로 직진하지 않고 뜬금없는 라면 타령이냐고. 라면 붇는데 흰소리하고 앉았냐고. 몇 안 되는 음주활극 독자들을 만날 때마다 똥 얘기, 오바이트 얘기에 ‘드러워 죽겠다’는 지적을 받았더랬다. 화장실 개그를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는 걸, 우아한 글쓰기가 안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기 위해 우리 부부의 추태 행각 면발을 과감히 덜어내 문향 가득한 문장의 국물을 내놓은 것.(사실 재미는 좀 없다, 그지?)
지난주말, 아들 녀석을 처가에 맡기고 와잎과 오랜만에 신촌에 갔다. 대학 시절, 내 청춘의 허기를 달래준 라면집이 거기에 있었다. ‘훼드라’. 최루탄 라면으로 불린 청양고추가 들어간 해장라면과 푸진 달걀말이에 소주 네댓 병은 너끈했던 곳. 새벽녘, 라면 국물을 들이켜며 “조타~”를 연발하는 와잎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도 너라서 다행이야.” 와잎은 뭔 단무지 먹고 트림하냐는 표정이었다.
X기자 xreport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