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같은 연애
진짜 말도 안 되는 남성들의 판타지… 야구·축구 보고 게임하는 데이트
등록 : 2016-05-20 17:33 수정 : 2016-05-22 09:55
연어회는 축구, 야구, 게임에 모두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이혼남
“설마 하루 종일 게임한 거야?” “아니, 2박3일. 수요일 저녁부터면 3박4일인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앞뒤로 둔, 국가가 급조한 나흘의 연휴가 주어졌을 때 딱 한 번 외출을 했다. 그때 만난 친구와의 대화는 저렇게 시작됐다. 너무 오랜만에 TV 모니터가 아닌 사람을 상대로 말을 했더니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연휴 기간. 낮과 밤이 바뀌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몰랐다. 배가 고파도 잠이 쏟아져도 한 게임만 더, 한 게임만 더 하다보니 밤을 새워 게임을 할 수 있었다. 하얗게 날이 밝아오면 타임워프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창밖이 어둑어둑해질 때도 그랬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아깝냐고? 물론 아깝다. 무수히 많은 다른 일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시간을 되돌린다면 뭘 하겠냐고? 아마도 다시 게임. 후회는 하지 말자. 재밌었으니까.
어떤 유부남들은 이런 이혼남의 일상이 부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대체로 게임을 즐길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게임을 하는 유부남들은 둘 중 하나다. 아내의 잔소리에도 정신 못 차리고 게임만 하는 ‘개망나니’거나, 게임을 즐기는 아내가 있거나!
“<아내가 결혼했다> 소설도 봤어?” 연휴 기간 딱 한 번의 외출에서 늦게 자리에 합류한 친구가 물었다. 그는 야구를 좋아한다. 안타깝게도 한화 이글스 팬이라 한참 가슴 아픈 야구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 애인들과 야구장에 참 열심히 다녔다. 그렇게 ‘구남친들’에게 야구를 배운 여성이 많았다는 이야기 끝에 화제가 축구로 넘어왔다.
“소설이 더 재밌었지?” 친구는 ‘나도 축구 좀 안다’는 식으로 다시 물었다. “당연하지. 축구 얘기가 영화보다 훨씬 더 많이 나오잖아. 축구와 연애에 관한 영화를 보려면 닉 혼비 소설 원작의 <피버 피치>를 봐야 해. 런던 연고의 아스널을 좋아하는 남자(콜린 퍼스)와 ‘훌리건’을 경멸했던 여자(루스 겜멜)가 연애하는 얘긴데…. 참, 2005년에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영화도 있어. <날 미치게 하는 남자>라고. 그건 야구 버전이야. 보스턴 레드삭스 광팬인 남자(지미 펄론)와 워커홀릭 여자(드류 배리모어)가 주인공이야. 그런데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새벽에 부부가 같이 맥주를 마시면서 엘클라시코(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보는 장면은 진짜 남자들의 판타지인 것 같아.”
<피버 피치>와 <날 미치게 하는 남자> 역시 남자들의 판타지가 실현되는 영화다. 남자는 여자 대신 자신의 팀을 선택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결국 받아들인다. 이게 진짜 말이 되는 얘긴가. 그 영화의 속편이 나온다면 그들은 결국 이혼하고 말 것이다.
2박3일 게임만 하고 단 한 번의 외출을 했던 연휴 기간. 게임을 하지 않은 시간에 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다른 일들 가운데 ‘데이트’라는 항목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혹시, 만약에,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게임을 좋아하고 축구를 좋아하고 야구를 좋아하는 애인과의 데이트라면 장소는 그냥 우리 집 거실이 될 수도 있었을까. 같이 게임하고, 같이 야구 보고, 같이 축구 보고, 치킨이나 시켜먹는 그런 데이트. 만사 귀찮은 이혼남의 판타지는 질이 낮다. 이혼을 해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레스터 시티 우승 만세!
이혼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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