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동이는 큰 손을 내밀며 자기 손목을 훨씬 넘게 잡고 이만한 것을 잡겠다고 합니다. 아들은 “에~이 가재가 원래 딱정벌레만 하지 그렇게 큰 기 어디 있나” 합니다. 기동이는 소백산 가재는 자기 손목을 훨씬 넘을 만큼 커서 한두 마리만 구워 먹으면 배가 부르다고 합니다. 자기는 매일같이 가재를 잡아먹고 컸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기동이네 식구는 어머니 빼고는 모두 덩치가 큽니다. 아들은 기동이를 달랩니다. 여기는 원래 그렇게 큰 가재는 없으니 잡으면 버리지 말고 다래끼에 담아라. 큰 것을 잡겠다고 고집 피우던 기동이는 계속 작은 것만 올라오자 포기하고 열심히 잡아서 제법 다래끼가 그들먹해졌습니다. 솥 당번인 기동이는 큰 무쇠솥을 지게에 지고 왔습니다. 솥단지를 열자 바가지, 칼, 도마, 숟가락, 그릇이 줄줄이 쏟아져나옵니다. “니 살림 차리나?” “다 있어야 할 것들만 생각해 지고 왔다.” 감자, 파, 마늘, 간장,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김치. 아들은 나름대로 한 가지씩 다 가져왔습니다. 호박 당번은 누리꾸리한 큰 호박을 한 덩이 가져왔습니다. 쌀 당번은 열 명이 넘는데 쌀을 한 사발도 안 되게 가져왔습니다. 어떤 아가 쌀 당번한테 “이 새끼, 쌀을 그렇게 조금 가져오면 어떡하나. 누구 코에다 바르나. 니 혼자 먹어도 모자라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쌀 당번은 엉엉 웁니다. 기동이가 걱정하지 말라며 빨리 가재 딱지를 떼고 잘 씻으라고 합니다. 기동이는 큰 솥을 도랑가에 걸고 물을 가득 붓고 끓입니다. 끓는 물에 고추장도 풀고 막장도 풉니다. 감자도 썰어 넣고 쌀도 씻어 넣습니다. 큰 호박 한 덩이도 다 썰어 넣습니다. 펄펄 끓는 솥에 손질한 가재를 넣습니다. 아들이 잘 노나 보러 나온 범석이 할머니가 모자라는 거 있으면 얘기하라고 합니다. 범석이 할머니는 펄펄 끓는 국솥을 바가지로 한 번 휘이 저어보더니 밀가루를 함지박에 담아 손가락 한 마디만큼씩 수제비를 만들어다 주시면서 이거 넣고 한소끔 끓으면 파, 마늘 넣고 먹으라고 합니다. 가재는 빨갛고, 파는 파랗고, 수제비는 하얗습니다. 호박이랑 채소랑 어울려 가재국이 아니라 아주 예쁜 가재죽이 되었습니다. 입술이 시퍼렇도록 물에서 텀벙거리다 가재죽을 먹느라고 빠지직 삐지직 삐작빠작 가재다리 씹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땀을 찔찔 흘리며 가재죽을 먹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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